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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행정진으로 자신이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내가 받은 은혜를 베품으로 회향하자.[생전예수재 입재 대공스님 법문]
작성자 법계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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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1년 5월 17일 수요일.

정유년 윤5월을 맞아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에서는

살아생전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고 자신이 지은 빚을 갚는 의미를 지닌

생전예수재 입재가 대중스님들과 많은 법우님들이 동참한 가운데 여법하게 봉행되었다.

특히 입재법문에서 대공스님께서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정진하고 내가 받은 은혜를

베품으로서 회향하는 생전예수재의 의미와 공덕에 대해서 유쾌, 명쾌, 통쾌한 감로법문을

설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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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스님 예수재 입재 법문 ♦♦

 

모두 반갑습니다.

오늘은 음력 윤오월 생전예수재 입재 날입니다.

날짜 상으로는 음력 오월도 되지 않았고 윤오월도 되지 않았지만 백중과 마찬가지로

예수재도 보통 입재는 미리 합니다.

오늘 17일이지요. 오늘 예수재 입재를 하고 6월 15일 중재를 지내고 막재 회향은 7월 10일

이렇게 지내게 됩니다.

오늘 5월 17일부터 7월 10일까지 이 기간 동안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서는

매일 사시불공과 저녁예불 전에 금강경 독송을 한편씩 하고 또 예수재 기간 동안

여러분 개인 수행과제로서 금강경 7권 사경을 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재 입재는 수요일이지요.

그래서 수요일 고참반 불자님들이 이 자리에 많이 계시리라 생각을 하고 또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수요일 고참반 불자님들은 그간 예수재를 많이 지내 보셨죠?

“네”

그래서 제가 구태여 예수재에 대해서 번거롭게 해드릴 필요가 없는데 그래도 지난 윤년 이후로

예수재에 오늘 처음 동참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 간략하게 예수재의 뜻과 유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오늘 처음 예수재에 오신 분 계신 분 손 들어 보세요.

이렇게 많이 계시네요.

처음 오셨으니까 설명을 잘 들어야 되겠습니다.

오늘 받으신 유인물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1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예수재란? ....이렇게 되어 있지요.

예수재가 뭐냐 그 말입니다.

한글만 보면 어떻습니까?

영락없이 옆 동네 교주이름이지요. 똑같습니다.

절에서 예수재 지낸다 하면 왜 절에서 우리 예수님 재를 지내냐고 항의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어요.

인터넷(지식인)에 예수재를 쳐보면...

왜 절에서 예수재를 지내냐 이렇게 생각없이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불교를 모른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단순히 불교만 모른다 하는 것은 괜찮아요.

불교를 모를 수도 있지요.

불교를 모르는 것 보다 더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그 얘기입니다.

예수재가 불교에서 지내는 의식이기 이전에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지내왔던

우리 전통문화의 한 일부다 그 얘기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대해서 무지한 겁니다.

 

예수재의 한자를 한 번 보십시오.

豫修齋 - 미리 예(豫) 닦을 수(修) 재계할 재(齋)

그래서 예수재(豫修齋)입니다.

거기 한글 ‘재’자를 잘 보셔야 합니다.

‘제’가 아니라 ‘재’입니다. 예수재입니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의 뜻을 보면 미리 닦는 재다. 그 말입니다.

예수재라는 세 글자 중에 가장 눈여겨 볼 글자는 재계할 재(齋)자입니다.

보통 우리들이 절에 와서 ‘재’ 이런 말을 들으면 49재, 천도재,

생전예수재 이런 재를 떠올리지만 그냥 밖에서 재라고 하면 어떤 말을 떠올립니까?

집에서 지내는 제사를 먼저 떠올려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웬만한 집에서는 제사를 다 지내지요.

옆 동네 종교 믿는 사람도 본인만 지내지 않으면 그만인데 주위 사람들한테도 지내지

말라고 그러지요.

그 정도로 제사는 한국사람 이라면 다 안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절에 와서 재를 지낸다고 하면 집에서 지내는 제사를 떠올려요.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절에서 지내는 재를 봐도 오늘 생전예수재를 봐도 어떻습니까?

위패도 모시고 단 차려놓고 그 위에 음식도 올려놓고 향도 피우고 잔도 올리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집에서 지내는 제사하고 똑같아 보이는 겁니다.

오랫동안 절에 다니신 분들 가운데도 재하고 제사하고 햇갈리는 분도 있어요.

오늘 처음 예수재에 동참하신 분들이라면 제사하고 다를 것이 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불교 공부하는 엘리트 불자님들이 다니는 도량이지요.

우리절 불자님들은 집에서 지내는 제사와 절에서 지내는 재를 잘 구별을 해요. 그죠?

대답에 자신감이 없어지네...^^제가 세워놓고 물어보겠습니까?^^

하지만 한 번 여쭤봐야겠네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수요일 오전 고참반 대법사님들께서 한 번 대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지내는 제사와 절에서 지내는 재에 대한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단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무엇입니까?

제가 이미 유인물에 다 적어 놓았어요.

“글자가 달라요.”^^

“스님, 듣기는 똑같은데 글자가 뭐가 다릅니까?”

 

거기 한자를 한 번 보세요.

재齋라는 글자는 제祭와 달리....이렇게 적어 놓았지요.

앞에 있는 재齋가 절에서 지내는 재齋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와 있는 제祭가 제사 할 때 제祭입니다.

한자가 다르지요. 글자가 다릅니다.

글자가 다르다는 것은 뜻도 다르다 그 얘기입니다.

한자를 보시면 완전히 다른 글자입니다.

재계할 재齋... 천도재, 49재, 생전예수재는 이 재계할 재齋자를 쓰는데 

그렇다면 재계한다는 말이 뭐냐?

한자도 어려워요. 뜻이...

재계한다. 재계한다니까 재계라는 뜻을 알아야 되겠지요.

 

 

우리들이 천도재 할 때 쓰는 재계할 재齋자의 뜻이 열 가지가 됩니다.

제가 며칠 전에 이 재계할 재齋자의 뜻을 알아보려고 대한화사전이라는

아주 두꺼운 12권으로 된 한문책이 있어요.

한자의 뜻을 적어 놓은 책인데 거기에 보니까 이 재계할 재齋자의 뜻이 열 가지가 넘어요.

이 재계할 재齋자의 제일 첫 번째의 뜻이 무엇이냐?

평소에 행동을 삼간다. 그런 뜻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리들이 살면서 평소에 늘 하던 행동을 조심히 한다.

경우에 따라서 하지 않는다. 그 말이거든요.

학생이라면(여러분 학교 다닐 때 생각해보면) 수업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어떻게 합니까?

옆에 짝꿍하고 떠들고 자고 도시락 먹고 떠들지요.

그러다 선생님께서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입을 다물고 책을 피워 놓지요.

이런 것을 행동을 삼간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불자님들 가운데 아주 일부는 평소 집에서는 고함을 지르고 악을 쓰고 성질을 부려도

절에 오면 어떻게 합니까?

절에 오면 새색시처럼 조신하게 행동하는 분들이 있어요.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몇 몇 분만 그런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행동을 삼가는 것이다.

 

즉 재계할 재齋의 첫 번째 뜻은 평소 행동을 삼간다. 그런 뜻입니다.

이 재라는 글자가 재미있는 것이 다른 뜻도 있어요.

옛날에는 이 齋자를 공부하는 작은 방을 재라 불렀어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조선시대 유학자 김종직선생님이 계시는데 그 분의 호가 뭡니까?

점필재(佔畢齋)입니다.

그 재가 바로 이 재齋입니다.

조선시대 서원에 딸린 건물가운데 공부하는 방을 재齋라 불렀습니다.

서원에 가면 동재, 서재라 해서 동쪽에 하나, 서쪽에 하나 조그만 방이 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공부하는 방입니다.

 

또한 이 재齋자는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적인 뜻도 많이 가지게 되었어요.

그 가운데 절에서 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기간 동안 계율을 잘 지키며 살았는가?

이것을 점검하는 의식이 있는데 포살이라 이렇게 불러요.

그런데 이 포살을 한자로 재齋라 이렇게 불러요.

그래서 포살하는 날을 재계일이라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 포살이라는 것은 뭐냐?

스님들하고 대중들이 모여서 계율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공부를 잘 했는지 점검하는 날이라 했잖아요.

포살이란 말은 다른 말로 정진, 수행정진 이런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재齋라는 글자에는 수행한다. 정진한다. 이런 뜻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재齋라는 글자의 의미는...

첫 번째 행동을 삼간다.

두 번째 공부하는 방

세 번째 정진, 수행, 그리고 포살이란 뜻도 있다 했지요.

 

크게 보면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불교적으로 봤을 때 ‘재’라는 글자는 정진하고 수행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 뜻이 거꾸로 치고

올라가서 첫 번째 뜻이 뭐라 했지요.

행동을 삼간다. 그랬지요.

행동을 삼가는 것이 곧 수행이다. 정진이다.

이렇게 뜻이 거꾸로 올라온 겁니다.

그래서 재라는 글자는 불교적으로 봤을 때는 정진, 수행 이렇게 보셔도 좋습니다.

물론 밖에서 봤을 때는 재계한다. 공부하는 방....이렇게 뜻으로 읽어야

할 때가 있지만 절에서 쓸 때는 수행, 정진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유인물 1번으로 돌아가서 예수재를 다시 보겠습니다.

 

豫修齋 - 미리 예(豫) 닦을 수(修) 재계할 재(齋)

자신의 업보를 닦기 위해 미리 자신의 재를 지낸다는 의미.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재계할 재(齋)자를 정진, 수행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예수재란 뜻이 미리 닦는 수행, 미리 닦는 정진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유인물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자신의 업보를 닦기 위해 미리 자신의 재를 지낸다는 의미라 그랬잖아요.

우리가 재를 유교식, 집에서 지내는 제사로 생각하면 절에 와서 자기 위패 자기가 써놓고

지내는 제사로 떠올릴 것이고 하지만 불교대학에 와서 공부를 하신 분들은 미리 수행을

하는 것이다. 미리 정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재라는 글자의 뜻을 알아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재라는 글자에 중심을 두고 설명을 드리니까 미리 예(豫)자와 닦을 수(修)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 단어도 중요하거든요.

 

예수라는 글자에 대해서 알아보겠는데 미리 예(豫)자와 닦을 수(修)라 유인물에 그렇게 적어 놨어요.

한자 뜻을 보면 말 그대로 미리 닦는다는 얘기입니다.

뒤에 재와 합쳐서 생각하면 수행과 정진을 미리 닦는다는 그런 뜻입니다.

이 ‘미리’라는 글자를 잘 봐요.

미리 닦는다. 미리 한다. 는 무슨 뜻입니까?

‘대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일에 대비한다는 뜻이요.

내일 비가 온다면 미리 무얼 해야 합니까?

장독 뚜껑을 닫아야 돼요. 그렇지 않습니까?

미리 닫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가 다 들어가 못 먹잖아요. 그리고 빨래도 걷어야 되고...

미리 한다는 것은 앞날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예라고 하는 것은 대비한다는 뜻이 있어요.

앞날을 대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하는 일은 언제 해야 돼요.

내일 비가 온다면 장독 뚜껑은 언제 덮어야 됩니까?

조금 있다가 비가 온다면 언제 닫아야 됩니까?

“지금”

그래요. 그 대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지금 해야 되는 거요.

미리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의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그러면 미리한다는 것은

언제하는 것이냐?

지금 하는 겁니다.

 

이제 곧 여름이 되면 수능기도 백일입제 기도를 합니다.

전국의 고3 수험생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거요.

학생들이 지금 공부하는 것은 언제를 대비해서 지금 하고 있는 거지요.

11월에 치게 될 대학 수능을 대비해서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겁니다.

그날 가서 되겠습니까?

고3 학생이 11월 수능 시험 날에 가서 공부하면 수능시험에서 잘 받을 수 있어요.

잘 받을 수 있나요?

여기 계신 분들은 시험 점수를 잘 못 받아본 모양이네...^^

그날 하면 당연히 잘 못 받지요.

그래서 미리 한다는 말은 지금 해야된다. 이 말로 봐야 합니다.

 

 

생전예수재는 지금 이 순간 수행하고 정진해야 한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미리 닦는다.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

미리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때가 되면 하는 거지.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한다는 거죠.

예수재 앞에 보통 생전이라는 말을 붙여서 생전예수재라 하는데 살아 있을 때

지금 닦자는 얘기입니다. 살아 있을 때...

살아 있을 때 수행하고 정진하자 그런 뜻입니다.

오늘도 살아있으니까 내일도 살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장담 못합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예수재 기간 동안 지금 닦자.

미리 닦자는 그 얘기입니다.

미리 닦자 해서 때가 되어 닦자 이런 뜻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바로 하자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 이 순간 열심히 수행정진하자는 것이

생전예수재에 담겨있는 깊은 뜻이요.

 

이 좋은 생전예수재를 언제 지냅니까?

보통 윤달에 지냅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수행정진하자 이것이 예수재의 깊은 뜻이라면

구태여 윤달에만 해야 될 필요가 뭐 있어요.

평소에도 늘 하면 되지.

그런데 예수재란 특별한 이름을 붙여서 윤달에 지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냥 막 지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인물 2번을 보시겠습니다.

 

2. 윤달에 행하는 이유

윤달은 3년에 1번 또는 8년에 3번이 돌아오는데 윤달은 예로부터 공달.덤달이라 하여

이사, 장례, 이장 등 어떤 일을 해도 좋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해도 좋기 때문에 이왕이면 가장 좋은 일, 즉 수행을 권하는 것이다.

윤달이 생기는 까닭은 다들 아실 겁니다.

음력 열두 달은 양력 열두 달보다 11일(열하루)이 짧습니다.

이걸 그대로 두면 계절이 크게 어긋나 버리지요.

그래서 이것을 막기 위해 음력 30일 정도를 모아가지고 달을 한 번씩 넣어 줘요.

이게 바로 윤달입니다.

그래서 윤달이 드는 해는 한 달이 더 생기는 겁니다.

일 년이 열두 달인데 윤달이 들면 열세달이 되는 겁니다.

한 달이 더 생기지요.

공짜로 생기는 달이라 하여 공달이라 부르고 덤으로 받았다 해서 덤달이라 이렇게 불렀던 겁니다.

사람의 마음이 희한한 것이 공짜나 덤으로 생기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요.

아까운 줄을 몰라요.

본래 일 년은 열두 달인데 한 달이 더 생겼으니 공짜로 시간 벌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흥청망청 보내는 겁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함부로 허비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한 번 가버린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흐르는 시냇물에 한 번 담궜든 발은 두 번 다시 같은 시냇물에 담글 수 없는 거요.

같은 물이라 해도 한 번 그 물은 흘러가 버렸어요.

오늘 우리의 삶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2017년 5월 17일 이 날은 우리네 인생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일기일회(一期一會)라.

모든 만나는 인연은 다 한 번뿐이다. 그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아주 소중한 시간이요. 윤달은 더욱더 소중하지요.

일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3년에 한 번 혹은 8년에 세 번씩 돌아오는 것이니까

더 중요한 거요.

 

이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되나.

그 대답을 불교에서 제시한 것이 바로 생전예수재다.

일 년은 본래 열두 달인데 윤달이 끼어서 열세달이 되었으니까 원래라면 일 년 열두 달을

정진할 수 있는데 한 달 더 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좋지 않습니까?

열두 달 수행정진 할 수 있고 열두 달 기도할 수 있고 열두 달 공부할 수 있는데 윤달이 있으면

열세 달을 할 수 있으니까 좋잖아요.

기도 수행정진 공부하니까 표정이 별로인데...^^

열두 달 밥 먹고 열세 달 밥을 먹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밥을 90끼나 더 먹잖아요.^^

이렇게 생각하니 더 좋죠?^^

그러니까 윤달이 얼마나 소중하고 좋은가 그 말입니다.

열두 번하는 것하고 열세번하는 것하고는 달라요.

숫자가 더 크잖아요.

12와 13의 차이입니다.

“스님, 12나 13은 거기서 거기죠.”

이렇게 생각하는데 12억하고 13억하고 같아요.^^

그렇게 얘기하면 큰 차이네요. 이러지요.^^

그래서 열두 달, 열세 달은 한 달 차이지만 그 한 달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12억이 되었다가

13억이 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가치로 따지자면 1원이 될 수도 있고 일조원이 될 수도 있다 그 말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 한 달을 잘 보내느냐의 차이에 달린 것입니다.

무언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되는가?

불교에서는 가장 큰 공덕을 지을 수 있는 생전예수재를 지내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로써 우리가 윤달에 생전예수재 지내는 까닭을 알아봤습니다.

 

생전예수재, 말은 많이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재입니까?

예수재에 대한 글자의 뜻은 알았죠?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수행정진 하자. 그 뜻은 알았는데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이제부터는 생전예수재 기간 동안 어떤 수행을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윤달이 낀 윤년은 해마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윤년에 하는 수행은 평년과는 좀 달라야 돼요.

평소 백중 때는 자기가 돌아가신 선망부모 조상님들을 위해서 재를 지내는데 윤달이

돌아오면 자기가 그 누군가도 아닌 자기자신을 위해서 재를 지냅니다. 이것이 생전예수재이지요.

보통 생전예수재 하면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재를 지내는 것이다.

이렇게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 말씀드린 것과 같이 비교해서 생각을 해보면

생전예수재라는 글자의 뜻은 살아생전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수행하자는 뜻이 있고

그리고 생전예수재를 형식으로 봤을 때 구체적인 수행방법으로 봤을 때 자기가

자기의 재를 지내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 천도재를 지내는 겁니다.

죽지는 않았으니까 49재는 아니지요.

천도재는 죽은 영가나 살아있는 사람 다 지낼 수 있습니다.

천도란 글자가 옮긴다는 뜻입니다.

옮길 천薦자에 건넬 도度입니다.

옮겨서 건네게 한다 그 말이거든요.

죽은 영가를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면 영가를 더 좋은 세상으로 건너게 하는 것이고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면 지금 상태보다 더 나은 상태로 옮기는 것이

천도란 뜻이거든요.

그런데 또 천도재를 지낸다 하면 집에서 제사하고 비슷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해요.

 

사실 말씀드린 대로 절에서 지내는 재의 형식, 눈으로 봤을 때는 집에서

지내는 제사하고 비슷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교의 관습을 불교가(우리 조상들이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니까)

포용했기 때문에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이지 형식만 받아들인 것이지 안에 내용까지는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유교의 제사는 어디까지나 죽은 혼령, 귀신을 위로하는 겁니다.

유교에서의 제사는 귀신을 위로하는 것이 목표예요.

귀와 신이지요. 혼백이라고도 하는데 혼과 백입니다.

혼이라는 것은 양의 기운이고 백이라는 것은 음의 기운인데 옛날 성리학에서 혼이라는 것은

서서히 흩어져서 하늘로 올라가고 백이라는 것도 서서히 흩어져서 땅으로 스며든다. 그랬거든요.

그 기간이 얼마입니까?

4대입니다. 4대...120년.

120년 지나면 다 흩어진다.

옛날 종갓집에서 제사를 지내면 4대까지 지내잖아요.

4대위로는 위패를 태워서 땅에 묻습니다.

왜냐하면 혼백이 다 흩어져서 음양으로 돌아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4대까지만 지낸 겁니다.

말 그대로 성리학에서는 귀신이 있다고 본거지요.

귀신을 위로해야 하기 때문에 상에다가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을 차려놓고 술도 올리고 하는 겁니다.

 

제사 지낼 때 술을 올릴 때 찬술을 올려요. 따뜻한 술을 올려요.

유교식 제사 잘 안지내지요. 요즘...

찬술을 올리면 안 됩니다. 원래는...

혼백이라는 것은 음양의 기운이 모여서 된 것인데 죽었기 때문에 음양의 기운이 흩어지고

있기 때문에 음기운이 있을 때 찬술을 올리면 음양이 흩어지는 거요.

그래서 혼백이 흩어진다 생각했기 때문에 찬술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겨울에 제사 지내면 술이 차게 되잖아요.

찬술을 따뜻하게 데운다는 의미로 촛대에 잔을 세 번 돌리는 겁니다.

그걸 술에 찬 기운 달아나라고 돌리는 거요.

절에 와서 천도재 지내는데 잔을 촛불에 돌릴 필요가 없어요.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여하튼 유교식 제사는 귀신을  위로하는 거요.

술먹이고 고기먹이고 과일먹이고 후손들 모여서 잘살고 있다는 것을 귀신에게 보여주는 것이

제사라면 불교식 재는 뭡니까?

영가(불교에서 죽은 사람을 영가라고 불러요.)이미 다 흩어졌고 남는 것은 식(識)밖에 없거든요.

의식할 때 그 식만 남는다고 그랬거든요.

식은 먹을 수는 없어요. 먹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알아들을 수는 있어요.

절에서 영가를 위해서 재를 올릴 때 상에 차린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식(法識)을

중요시 합니다.

법식이라는 것이 무었니냐?

법은 곧 부처님의 말씀이죠.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을 먹어야 된다는 그 말입니다.

절에서 지내는 재는 절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항상 독송을 하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영가에게 일러주는 거다 그 얘기요.

영가가 먹고 냄새 맡는 것은 못해도 들을 수는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경전을 항상 독송을 해요.

만약 절에서 지내는 재에 경전독송이 빠진다면 그것은 재가 아닙니다.

그냥 제사지.

절에서 경전독송만 하면 되지 과일하고 음식은 왜 차려 놓습니까?

그것은 재에 참석하신 분이 드시라고 올려놓은 거지요.^^

절에 왔는데 그냥 맨입으로 가면 섭섭하니까 올려놓는 겁니다.

또 우리네 문화가 절에 와서 재를 지내고 같이 음식을 나눠 먹으면 회향이다 해서 좋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많이 올려야 돼요. 그래서 나눠 먹는 겁니다.

여하튼 경전을 독송하는 까닭은 뭐냐?

영가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업장을 녹여서 더 나은 몸을 받거나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발보리심 그런 마음을 내게 하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재다 그 말입니다.

이것을 제도라고 해요. 다른 말로는 천도라 그렇게 얘기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절에서 지내는 죽은 영가를 위한 재의 뜻인데 생전예수재는 뭡니까?

영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본인을 위해서 지내는 거요.

그래서 위패에는 영가이름이 아니라 누구이름을 적어 놓았습니까?

내 이름이 적혀 있지요.

기분이 좀 어때요.

기분이 좀 묘하지요.

내 이름을 적어 놓고 내가 내 이름에다 절을 하려니까 이상해요.

내가 내 이름을 적어 놓고 나를 제도하는 겁니다.

 

지장경에 따르면...

49재나 천도재를 지낼 때 그 공덕의 7분의 1은 누구에게 간다 했지요.

영가한테 간다 했지요.

나머지 7분의 6은 본인한테 온다 했거든요.

그런데 돌아가신 영가를 위해서 49재나 천도재의 공덕이 본인에게 7분의 6이 오고

영가에게 7분의 1이 간다고 했는데 쉽게 말해서 본인이 다 먹지 못한다 그 말이요.

그런데 생전예수재는 어떻습니까?

본인이 본인을 위해서 지내는 재니까 공덕을 전부 본인이 다 가져가는 겁니다.

공덕이 본인에게 돌아가는 겁니다.

생전예수재 동안 수행정진 기도한 공덕은 온전히 자기에게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생전예수재를 처음 지낸 것은 옛날 인도의 마가다국의 왕이었던 ‘빔비사라’라는

이름의 왕이었어요.

이 왕이 처음 생전예수재를 지냈어요.

빔비사라왕이 어느 날 잠자리에 들었는데 저승사자가 와서 다짜고짜 왕을 끌고 가는 거요.

요즘말로 하면 소위 잠자다 돌연사를 당한 거지요.

아시다시피 빔비사라왕이라 하면 누구입니까?

부처님께 최초의 절 ‘죽림정사’를 지어서 보시하였고 부처님과 스님들께 많은 보시를 한

불교역사상 가장 뛰어난 불자가운데 한 사람이 빔비사라왕이요.

그런 왕이 갑자기 죽어서 저승(지옥)에 끌려갔다는 것이 믿을 수 없잖아요.

사실 그 이야기는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이때 빔비사라왕은 젊을 적 이야기입니다.

아직 부처님을 만나기 전 이야기입니다.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성정이 굉장이 포악하고 급했다고 그래요.

빨리 왕자를 얻기 위해서 어떤 수행자를 죽이는 일도 저질렀다 해요.

그것은 또 훗날 비극의 씨앗이 되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관무량수경 공부할 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하튼 빔비사라왕이 갑자기 죽어서 지옥에 끌려가니까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또 억울해요. 나이도 많지 않은데 왜 지옥에 끌려가야 되나...

그래서 빔비사라왕은 자신을 끌고 가는 저승사자에게 물었지요.

“왜 제가 지옥에 가야 됩니까?

저는 살아생전 백성들에게 성정을 많이 베풀었는데 지옥에 가야 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저승사자가 하는 말이...

“그대가 백성들을 위해 성정을 베풀었다고는 하나 자신이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일을

게을리 했으니 그 죄업으로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빔비사라왕이 놀라고 두려워서 저승사자에게 간청을 했지요.

세상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면 좋다고 생각을 할뿐이지 자기가 지은

죄업을 참회해야 된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다시 저를 돌려보내 주시면 세상에 가서 선행도 많이 하겠지만 지은 죄업도

참회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널리 가르치겠습니다. 이렇게 간청을 해요.

저승사자는 왕의 간청을 듣고 그렇다면 그대가 가서 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지은 죄업을

참회할 수 있도록 잘 가르쳐 봐라 하고 다시 살려 보내 줍니다.

그 이후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을 만나서 죽림정사도 보시하고

여러 가지 성정을 베풀었지요.

 

생전예수재의 유래는 바로 자신이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좋은 일도 많이 해요.

선행도 많이 하고 선업도 많이 짓는다 그 말입니다.

복을 짓는 일을 많이 해요.

선행도 많이 하고 복을 짓는 일도 많이 하지만 알게 모르게 짓는 죄업도 역시 많다 그 말입니다.

죄업인지 알고서도 지은 죄업, 내가 짓는 일이 나쁜 일인지 알면서도 짓는 죄업 이런 죄업도 있어요.

내가 나쁜 일을 알면서도 하는 나쁜 행동 뭐가 있어요.

이것은 집안 형편이나 개인의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지은 죄업 때문입니다.

본인이 진짜 나쁜 짓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에요.

가난한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훔치고...

 

그 유명한 얘기가 있잖아요. 장발장...

프랑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 장발장이지요.

조카가 굶주리는 것을 보고 가게에 가서 빵을 훔치지요.

4년형을 받았지요. 빵 하나 훔친 죄로 4년...

사람이 굶어죽기 직전이 되면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것은 본인이 잘못인줄을 알면서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런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죄다 그 말입니다.

또 어떤 죄가 있습니까?

낙태가 있지요.

이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자도 똑같이 책임이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둘이 같이 참회를 해야 돼요.

또 죄인 줄 알면서도 짓는 죄도 있고 본인이 죄업인지 모르고 짓는 죄업도 있다 그 말입니다.

애초에 죄업이란 생각도 없이 죄업도 있어요.

보통 죄업은 삼업으로 짓는다고 그러거든요.

 

삼업이란 바로 신 구 의를 말하는 겁니다.

신(身)은 몸이고 구(口)는 입이고 의(意)는 생각을 말합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 구 의 삼업으로 짓는 죄업 가운데 신, 몸으로 짓는 죄업은

죄업이라 생각을 해요.

남을 때리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이런 것은 본인이 스스로 나쁜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입으로 짓는 죄, 생각으로 짓는 죄는 나쁜 일인지 죄업인지 잘 구별을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가장 많이 짓는 죄가 뭡니까?

구업입니다. 입으로 짓는 죄...

내가 생각할 때는 생긴 것이 그 모양이냐?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가슴에 비수가 되어

팍팍 찔리는 거요. 큰 죄업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한 말로서 남에게 큰 상처를 주는 말...

이런 것은 큰 죄업인데 본인은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나쁜 생각, 저 사람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역시 죄업이요.

그런데 스스로는 이런 것이 죄업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입과 마음으로 짓는 죄업도 똑같은 죄업이요.

이러한 죄업들을 참회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생전예수재를 지낼 때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자신을 위해서 부처님 말씀, 경전을 독송하면서 내가 지은 죄업을 참회해야 되는 겁니다.

이것이 생전예수재를 지내면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입니다.

기도 올리면서 본인뿐만 아니라 자식이름도 많이 올리셨는데 절하면서

우리자식 잘 되게 해주십시오. 가 아니라 그 동안 지은 죄를 먼저 다 참회합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 첫 번째라는 겁니다.

 

생전예수재를 지내면서 해야 할 일은 내가 지은 빚을 갚는 일입니다.

빚 갚는다니까 스님 저는 남한테 빚진 일이 없는데요.

은행 통장에 빌린 돈도 없고 제 능력으로 잘 살아 왔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빚을 지고 태어난 거요.

나라는 존재는 부모님의 피와 살을 빌려서 이 세상에 온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피와 살을 빌려서 왔지 어떻게 그냥 왔겠어요.

부모은중경을 보면 어머니가 나를 낳을 때 쏟은 피의 양이 서말이라 그랬습니다.

그 만큼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들을 이 세상에 낳아준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께 우리가 빚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거요.

“나는 우리 엄마, 아버지한테 빚이 없다.”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젖을 먹이고 키워 주신 은혜를 단순히 돈으로 갚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빚은 세속에서 말하는 채무관계의 빚이 아니라 이것은 바로 두텁게 입은 은혜입니다. 은혜...

갚아야 할 은혜...

그런데 이러한 은혜를 받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갚아야 됩니다.

“스님, 저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셔서 갚을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 빚을 반드시 부모님에게만 진 것이 아니죠.

절에서 새벽예불 하기 전 새벽 종성을 하면서 읊는 게송가운데

오종대은명심불망五種大恩 銘心不忘이라는 게송이 있어요.

새벽예불에 참여하신 분들은 한 번 들어보셨겠지요.

 

각안기소 국왕지은 생양구로 부모지은(各安其所 國王之恩 生養劬勞 父母之恩)

유통정법 사장지은 사사공양 단월지은(流通正法 師長之恩 四事供養 檀越之恩)

탁마상성 붕우지은 당가위보 유차염불(琢磨相成 朋友之恩 當可爲報 唯此念佛)

여기까지가 바로 ‘오종대은불망’이라는 게송이요.

 

첫 번째 게송은 ‘각안기소 국왕지은’이라 했는데 국왕이라는 것은 곧 국가를 말하는 겁니다.

즉 우리들이 각자의 처소에서 각자의 가정에서 생활터전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은

나라의 은혜다. 그 말이죠.

이것은 오종대은 가운데 첫 번째 은혜입니다.

두 번째는 ‘생양구로 부모지은’이라 했으니까 나를 낳아준 부모님의 은혜를 말하는 겁니다.

세 번째 ‘유통정법 사장지은’이라 바른 가르침을 가르쳐 준 스승의 은혜...

네 번째는 ‘사사공양 단월지은’이라 의식주를 나에게 베풀어 주신 여러

시주자들의 은혜...

 

우리들이 내 돈으로 음식을 사먹고 내 돈으로 옷을 사 입는다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이 옷을 만들고 농사를 지어서 음식을 지어 먹을 수 있도록 하는데 까지는

엄청난 수고가 따릅니다.

그 수고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그런 뜻입니다.

다섯 번째는 ‘탁마상성 붕우지은’이라 서로 바른 법을 배움에 있어서 물러나지 않도록

도와주는 도반의 은혜...

이 다섯 가지가 오종대은 큰 은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부모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한테 심지어 자연의 은혜에 의지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가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죠.

그러니 나는 모든 존재에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 빚을 갚는 것이 생전예수재를 통해서 해야 할 두 번째 일입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진 은혜의 빚을 갚는 것이다.

 

그 은혜, 그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내가 여려 사람들한테 받은 그 은혜를 도로 갚으려면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겠습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돼요. 거꾸로...

내가 받았으니까 내가 베풀면 되는 겁니다.

내가 모든 존재에게 은혜를 입었으니까 그 은혜를 갚는 것은 반대로 내가 모든 존재에게

은혜를 베풀면 되는 것이다. 간단하잖아요.

나라에 진 은혜를 갚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 되는 것이요.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 되고 여자들은 납세, 세금을 잘 내면 돼요.

부모님에 대한 은혜는 효도를 다하면 되고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제자의 도리를 다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면 되고 시주자에 대한 은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도반에 대한 은혜는 우정을 다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받은 만큼 베풀면 그 은혜를 갚는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들이 보답해야 할 은혜는 산더미 같이 많아요.

우리들이 지금 밟고 있는 땅, 강, 산, 하늘, 마시는 공기...

여기에도 은혜가 가득하다. 이렇게 한량없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요.

 

수생경의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들은 이와 같이 태어날 때 은혜를 입게 된다.’

그렇지요. 부모님에게도 은혜를 입는 것이고 주변사람들에게도 은혜를 입는 것이고 하다못해

마시는 물에게도 은혜를 입고 태어났는데 그래서 빚을 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은혜가 공짜가 아니고 빚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빚을 갚아야 되는데 수생전(壽生錢)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유인물 4번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지은 빚 (壽生錢) 갚기...이렇게 되어 있지요.

그 내용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조상님들과 부모님, 주변 이웃, 친지들과 천지자연의

혜택을 입고 살아가는 존재이며, 이는 갚아야 할 빚이다.

따라서 예수재 때 그 빚을 갚음으로서 자신의 무거운 업보를 줄이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서 예수재 때 금강경을 독송하면 그 빚을 갚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수생경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진 빚을 수생전이라 했는데 이것을 갚기 위해서는 생전예수재 기간에 어떻게 합니까?

해보신 분들은 아시죠?

전생조견표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자신이 진 빚이 나와 있습니다.

그 빚을 지전으로 대신해서 불단에(빚을 갚겠습니다.)하고 올리는 겁니다.

또 금강경을 독송함으로서 빚을 갚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우리가 모든 존재에게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하니까 그 은혜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갚으려면 힘들어요.

세상천지만물에게 은혜를 입었는데 어떻게 천지만물을 다 찾아다니면서 은혜를 갚겠느냐 그 말이요.

그래서 대신 지전을 불단에 올리고 경전을 독송함으로서 그 은혜를 갚는다는 그 말입니다.

이 지전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 않게 보입니다.

여기에는 도리가 있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받은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되는가?

우리가 반대로 모든 존재들에게 은혜를 베품으로서 은혜를 갚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재 기간 동안 이 지전을 통해서 이 지전을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전을 팔면 뭐가 됩니까?

시주금이 되는 겁니다. 그 시주금을 중생들을 위한 불사에 회향함으로서 그 은혜를 갚게

된다는 그 말입니다.

회향함으로서 갚는 것이지 단순히 이 지전을 사서 올리는 행위로 갚는 것이 아니라

이 지전으로 모인 시주금이 모든 중생들을 위한 회향이 될 때 그 때 진짜로 빚을 갚을 수

있게 된다는 그 말입니다.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 오셔서 이 지전을 구입해서 시주를 해서 올리면

여러분은 전생에 진 빚을 반드시 갚을 수 있습니다.

 

 

회향하면 우리절을 따라 올 곳이 없다고 저는 자신있게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 번 보십시오.

다른 곳과 비교해서 우리 한국불교대학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한 번 보십시오. 불사...

교육(이서중고등학교, 참좋은 유치원, 참좋은 어린이집)

복지...무일복지법인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여섯 가지가 넘습니다.

의료...영천에 참좋은 병원이 있지요.

NGO활동...우리나라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무일복지법인에서 하는 일이고

                 해외, 전 세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NGO비유디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절만 잘되자고 하는 일이 아니고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잘되자고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향입니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빚을 갚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니겠습니까?

우리절에서 하고 있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어떻게 우리절의 힘이겠습니까?

오늘 참석하신 한 분, 한 분 불자님들의 힘으로 교육과 복지 그리고 NGO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생전예수재 기간 동안 여러분들이 동참하신 이 시주금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회향하게 돼요.

이것이 내가 모든 존재에게 되갚는 길입니다.

내가 입은 혜택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절에서 생전예수재에 동참하시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수승한 생전예수재의

동참이다. 는 것을 저는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앞서 오종대은명심불망에 마지막 게송에 뜻이 있는데...

그 마지막 게송이 당가위보 유차염불(當可爲報 唯此念佛)이라.

다섯가지의 큰 은혜를 갚는 길은 오직 염불밖에 없다 그랬습니다.

 

당가위보 유차염불이라.

이러한 은혜를 갚는 길은 오직 염불밖에 없더라.

나라에 입은 은혜, 부모님에게 입은 은혜, 선생님에게 입은 은혜, 시주자에게 입은 은혜,

도반에게 입은 은혜 그리고 천지만물에게 입은 은혜를 갚는 길은 오직 염불밖에 없다. 그 구절입니다.

여러분들이 오해하시면 안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염불은 우리가 기도시간에 관세음보살 하는

정근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이때 말하는 염불이란 말 그대로 생각 념念, 부처님 불佛입니다.

부처님을 생각하는 겁니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오직 부처님을 생각해야 된다는 그 뜻이요.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뜻이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부처님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어떤 생각이 들어요.

4층에 계신 백의관세음보살님 얼굴을 떠올리는 분도 계실 것이고 석굴암부처님을 떠올리는

분도 계실텐데 그것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상호를 생각하는 거죠.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것이 뭡니까?

부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그랬잖아요.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 했습니다.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법을 생각하는 겁니다.

이 때 말하는 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우리가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그 가르침대로 행해야 한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우리가 입은 은혜를 갚는 길이다 그 얘기입니다.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정법대도량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대학에서 공부하고 수행정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하는 일도 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위하는 일도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오늘 5월 17일 생전예수재 입재에 동참하시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일도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한 죄업의 참회와 받은 은혜를 갚는 길도 됩니다.

동시에 다른 모든 중생을 위한 길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방금 수생경에도 나와 있다고 말씀드렸듯이 지전을 올리고 금강경을 독송하게 되면

그 빚을 갚음과 동시에 자기자신에게도 커다란 수행공덕이 된다. 이렇게 얘기를 했지요.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서는 예수재 기간 동안 금강경 7권을 사경수행과제로 삼았습니다.

그 까닭은 제가 처음 말씀드린 대로 예수재란 결국 수행과 정진입니다.

수행과 정진을 함으로서 자신이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겁니다.

또한 자신이 진 빚을 갚는 일입니다.

그래서 수행과 정진이 빠지면 죄업참회도 되지 않고 빚을 갚는 일도 되지 않는 거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과 정진입니다.

그래서 수행과 정진을 할 수 있도록 금강경 7권을 사경을 하셔서 가지고 오셔야 됩니다.

이렇게 예수재를 지내는 것은 나 개인을 위해서는 수행이 되고 넓게 봤을 때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도 큰 공덕이 됩니다.

공덕에 대해서 경전에서는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는가?

 

유인물 3번을 보십시오.

3. 생전예수재의 공덕 - 관정경(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

긴 이름의 경전이지요. 너무 기니까 줄여서 관정경이라.

별로 길지 않아도 짧게 줄여서 부르는 경우가 있지요.

법화경의 원래 제목이 ‘묘법연화경’이지요.

대방광불화엄경도 화엄경...

그러니까 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이건 너무 길지요.

관정경이라 부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관정경 이렇게 치면 나오지 않고 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 이렇게 해야 한글대장경 목록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 생전예수재의 열 가지 공덕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① 자신은 물론 자신과 인연있는 모든 이의 마음이 항상 즐거우며 행복해진다.

② 삼생의 지은 업장이 모두 소멸된다.

③ 몸과 정신이 맑고 상쾌해진다.

④ 온 집안이 화목하며 평안해진다.

⑤ 건강하고 무병장수하게 된다.

⑥ 심성이 맑고 청정해진다.

⑦ 발원하는 일체의 소원이 성취된다.

⑧ 자손이 창성하고 부귀해진다.

⑨ 견성하여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⑩ 내생에는 반드시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된다.

관정경에서 말하는 생전예수재의 공덕 열 가지였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홉 번째 공덕, 견성하여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했잖아요.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향하는 바는 1번에서 10번 가운데 9번입니다.

견성하여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작년 백중 때도 말씀드렸듯이 지장경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시고자 하신 궁극적인 말씀은

모든 중생이 견성성불하게 된다. 그 얘기입니다.

지장경 한 편을 독송한다고 영가들이 천도 잘되고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견성하고

성불할 수 있다는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거요.

나머지는 다 방편인 겁니다.

그래서 아홉 번째 공덕,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향하는 바, 모든 대승경전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자타일시 성불도다 이 말입니다.

나와 남이 모두 성불하는 것이다 그 말이지요.

 

예수재도 결국은 수행입니다. 정진입니다.

1번부터 10번까지의 공덕가운데 9번을 제외한 나머지 공덕들은 전부 우리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는 공덕이고 9번 공덕이야 말로 우리가 성취하는 목표가 되어야 할 그런

공덕이다. 는 말입니다.

이러한 열 가지 공덕을 모두 성취할 수 있다 했으니까 오늘 오신 우리 불자님들께서는

생전예수재를 지낸 공덕으로 이러한 공덕을 다 성취 하시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불자님들이 생전예수재를 회향하는 그 날(7월 10일)까지

기도하시고 정진수행 하셔서 열 가지 공덕을 모두 성취하시고 또 바라는 모든 일이 원만하게

이루기를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성취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금강경 사경 절대 잊지 마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관세음보살

 

● 중재: 6월 15일(목) 대륜스님 법문

● 막재: 7월 10일(월) 혜문스님 법문


 환희심 가득한 그 열정, 그 감동 그대로 10년, 20년 아름다운 동행길 쭉 이어가자[신입생 엠티를 돌아보며]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며 회주큰스님과 함께 하는 보이차 시음법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