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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중초재 ~~~~
작성자 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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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2017년 백중경전 산림법회가

 지난 19일 회주 큰스님의 특별법문과 함께 입재되어

  7월 29일 토요일 오전

 대구 큰절을 비롯한 전 도량에서

초재기도법회가 일제히 봉행되었습니다. 

 

 대구 큰절 대웅전 전법당과 옥불보전 큰법당에는

선망조상님과 일체 인연있는 영가님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불자님들의 기도 열기가 가득하였고  

대중님들께서는 지극정성 영가천도 축원을 해 주셨습니다.

 

올 해 백중 천도재에는에는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대중스님들의

백중경전 특별법문이 예정이 되어 있는 있고

이 번 초재에는

 대공스님께서 불설무량수경 경전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법회에 앞서 아침예불 ~~

 

 

 

 

 

 

영가단에 지극정성 잔을 올리고 ~~~

 

 

 

 

 

 

 

 

 

                           

 

                                      백중초재 대공스님법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모두 반갑습니다.

오늘은 7월 보름 백중 초재 날 입니다.

더운 날씨와 휴가철이 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많은 불자님들께서

돌아가신 선망부모님과 일체인연영가들의 업장소멸과 왕생극락을 위해서 우리 한국불교대학대관음사 법당에 많이 오셨습니다.

지난 19일 백중 입재 법문에서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백중 천도재는 우리들이 영가님들께 입은 은혜를 갚는 보은불사이며 영가님들이 생전에 지었던 업장을 녹여드리고 더 나은 몸을 받을 수 잇도록 돕는 구제불사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천도재는 비단 영가님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 재를 지내는 우리들에게 도 크나큰 복이 된다. 이를 큰스님께서는 작복 불사 정업불사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작복불사는 말 그대로 복을 짓는 일이고 정업불사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을 녹이는 일이다 이런 뜻입니다.

이와 같이 백중에 천도재를 지내면 네 가지 공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천도재를 잘 지내서 영가님과 우리들이 모두 복을 받으려면 천도재를 여법하게 잘 지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여법하게 잘 지낼 수 있는가?

이것은 역시 지난 입재 법문에서 큰스님께서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도재를 잘 지내기 위한 여섯 가지 조건이라 하여 지난 입재법문에서 말씀 하셨는데

기억을 하십니까?

기억이 나요?

안나요?

오늘같이 좋은날 괜한 것을 물었네요.

천도재를 잘 지내기 위한 여섯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 조건은 정법도량.

정법도량에서 천도재를 지내야 한다.

두 번째는 정법스님.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계를 받은 스님들이 지내야 한다.

세 번째는 정법 의식.

제대로 된 천도재 의식에 따라 천도재를 지내야 한다.

네 번째는 대승 경전을 독송하고 그 법문을 들어야 한다.

그랬습니다.

다섯 번째는 오늘같이 많은 대중들과 함께 천도재를 지내야 한다.

여섯 번째는 여러 번 가급적 많이 천도재를 올려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백중 천도재를 지내서 영가님과 우리들이 업장을 녹이기 위해서는 이렇게 여섯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 여섯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은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이렇게 많은 대중들이 오셔서 정성껏 백중천도재를 올리는 곳은 대한민국에서는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밖에 없지 않느냐?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 그래요.

괜한 것을 물었나요?

아무튼 천도재를 잘 지내기 위한 여섯 가지 조건 중 네 번째 조건은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그 법문을 듣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 여러분들이 참석하신 백중초제는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여섯 가지 조건을 모두 다 갖추었습니다.

여기에 지금부터 대승경전 법문만 들으면 오늘 백중초재는 완벽한 천도재가 되겠습니다.

이것을 위해 많이 부족한 제가 이 자리에 올라 왔습니다.

 

이제부터 본론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릴 경전은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주보를 통해서 알고 계실텐데 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의 경전입니다.

정확하게는 불설무량수경이라 하는데 오늘 받으신 유인물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경전제목이 유인물 첫 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

유인물 경전 불설무량수경이라 되어 있는 것이 유인물 첫 페이지입니다.

거기 보면 불설이라 되어 있는데 불설이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 다음 세 글자 뭡니까?

무량수라 나와 있는데 무량수가 무슨 뜻입니까?

아미타부처님의 한자 이름이 무량수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을 무량수부처님이다 이렇게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불교는 중국이 아니라 인도에서 발생했죠?

그러니까 무량수부처님이 아미타부처님인 것이 아니라 아미타부처님이 무량수부처님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셔야 맞습니다.

자 그러면 아미타의 뜻이 무량수라 그 말인데 이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은 두 가지의 뜻이 있어요.

무량수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뜻이 하나 더 있다 그 말입니다.

 

유인물 1번을 보시겠습니다.

1.

무량수라 해가지고 나와 있는데 무량수라 할 때는 인도말 아미타유스를 번역한 겁니다.

아미타유스란 바로 한량없는 생명.

한량없는 생명을 말하는거요.

한량없는 생명이란 바로 부처님이 가진 복을 말하는 겁니다.

복덕. 그리고 동시에 한량이 없기 때문에 시간에 걸림이 없다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무량광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광자가 빛광 자 아닙니까?

수 자는 목숨 수자이고.

그래서 무량광은 아미타브하라는 인도말을 번역한 것인데 아미타브하는 한량없는 빛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빛은 곧 지혜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우리들 중생의 깜깜한 무명을 밝혀 주시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혜를 빛에 비유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량없는 빛이기 때문에 이 빛은 공간에 걸림이 없다.

그래서 종합하자면 아미타 부처님의 이름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한량없는 생명이라는 뜻의 무량수 한량없는 빛이라는 뜻인 무량광이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이름은 바로 아미타 부처님의 복과 지혜를 상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아미타 부처님은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으시다 그런 뜻입니다.

보통 우리들은 부처님은 진리 그 자체다 이렇게 얘기 하잖아요?

그래서 부처님은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으시다 하는 말은 진리는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다 그런 뜻입니다.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만약 진리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한다면 그것을 우리가 진리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가면 어 되었다가 저기가면 아 되는 게 과연 진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본래로 그러하기 때문에 진리다 그래서 부처님은 곧 진리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항상 그러하시다.

즉 우리가 자주 쓰는 여여하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항상 여여하신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은 어때요?

우리들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항상 여여합니까?

여여해요?

거울을 한 번 꺼내 보세요.

어제까지만 해도 이팔청춘이었던 것 같은데 거울속에 보니 누가 앉아 있습니까?

깜짝 놀라죠? 따라서 우리들은 여여하지 못하다.

여여하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들은 부처님과 같이 항상 여여한 진리를 추구해야 된다.

우리가 여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여하신 부처님을 항상 우리는 추구해야 된다.

그래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무량수라는 말이 아미타라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렇다면 무량수라는 말이 아미타라는 말이기 때문에 무량수경을 아미타경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돼요? 안 돼요?

돼요?

돼요 하신 분은 우리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안하신 것 같애.

우리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 분들은 뭔가 이상한 게 있어요.

?

내가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아미타경이라는 경전을 따로 들어본 같은데 무량수경을 아미타 경으로 바꿔서 불러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들어야 됩니다.

무량수경과 아미타경은 뜻은 같은데 이 두 개는 다른 경전입니다.

다른 경전이에요.

 

그래서 유인물 2번을 보세요.

유인물 2번을 보면 거기 보면 불설무량수경이라 해놓고 옆에 뭐라고 해놓았습니까?

한자로.

어려운 한자이지요?

대경.

그걸 다 읽으시네요~^^

대경이 뭡니까?

큰 경전인데

분량이 많다. 경전이 두껍다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두꺼운 걸 별로 안 좋아하시지요?

그 다음에 무량수경의 내용이 뭐냐?

48대원.

아미타부처님의 48대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48대원이라는 것은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지만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 부처님이 아니셨어요.

법장보살라는 수행자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 세웠던 마흔여덟 가지 중생들을 위한 서원입니다.

그런데 그 마흔여덟 가지 서원이 전부 중생들을 위한 서원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자비의 서원이다.

그래서 무량수경은 자비를 말하는 경전이다. 이런 말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또 무슨 경전이 있습니까?

아미타경.

이것을 옆에 뭐라고 해놓았어요?

소경. 작을 소자를 써서 소경이다.

이 말은 분량이 적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분량이 적은지 우리절 법요집에도 실려 있어요.

금강경 다음에 실린 경전이 아미타경입니다.

이 아미타경은 어떤 내용인가 하니 극락정토에 대한 장엄,

극락이 어떻게 꾸며져 있는가? 하고. 극락에 어떻게 왕생할 수 있는가.

극락왕생의 요체가 나와 있다.

그래서 이것은 극락에 왕생하는 법이 나와 있기 때문에 지혜에 관한 경전이다.

무량수경은 아미타부처님의 자비.

그리고 아미타경은 아미타 부처님의 지혜.

이 두 가지를 말하는 경전입니다.

그런데 이 두 경전이 분량도 다르고 내용적으로 달라도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공통점.

유인물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요체는 바로 그 옆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육자명호 여섯 글자 이름에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 괄호 안에 뭐가 들어가야 되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가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아미타 부처님의 이름이니까 우리가 육자명호라 부르는 겁니다.

 

그러면 아미타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이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에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진짜로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 안에 아미타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들어 있는지 확인을 해 봐야 되겠지요.

유인물 3번을 보십시오.

거기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법장보살, 그 옆에 나와 있는 한자가 법장보살입니다.

그리고 괄호에 뭐라고 되어 있겠습니까?

아미타불 되어 있지요?

그 괄호에 아미타불이라고 적으면 됩니다.

제가 이 괄호를 만들어 놓은 것은 여러분들이 한 번 더 눈길을 주시라 이런 뜻에서 괼호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게 뭐냐?

법장보살이 바로 아미타불이다 그 얘기입니다.

그런데 법장보살이 곧 아미타불이다 하는 말은 법장보살이 성불하여 아미타 부처님이 되었다.’ 그런 뜻입니다.

 

유인물 4번을 보면 성불의 인행이라 되어 있지요? 인행.

바로 성불하기 위해서 닦은 수행을 이행이라 그럽니다.

법장보살은 어떤 수행을 통해서 아미타부처님이 되었는가?

바로 유인물에 나온 것과 같이 48대원, 마흔여덟 가지 큰 원을 일으켰다. 세웠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그 원을 일으키기 위한 수행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이 되었다 그 얘기이지요.

그러면 아미타 부처님의 마흔여덟가지 대원이 궁금하실텐데 이 마흔여덟가지 서원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이 마흔여덟가지 다 말씀 드리면 오늘 법문 끝입니다.

그래서 이 마흔여덟가지 서원은 다음에 무량수경 공부할 때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던 마흔여덟가지 서원은 전부 다 중생들을 위한 자비의 서원이다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법장보살께서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들을 다 살펴보니까 무명번뇌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 그게 고통인줄을 모르고 그 고통에서 벗어날 기약도 없는거라.

그래서 법장보살은 고통 없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항상 들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서 모든 중생들을 그곳에 태어나게 하고 또 거기서 성불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런 서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서원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나열한 것이 바로 48대원이다.

그런데 법장보살이 마흔여덟가지나 되는 서원을 세우면서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어떤 다짐을 했는가?

내가 지금 중생들을 위해 마흔여덟가지 서원을 세웠는데 이 서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성불하여 부처가 되지 않겠다 이렇 다짐을 한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다짐 같지 않아요?

지장보살께서 어떤 다짐을 하셨습니까?

지옥 중생을 전부 구제하지 못한다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

그런데 지장보살님은 아직도 지장보살님이지요?

그런데 법장보살은 지금 법장보살입니까?

아니지요.

아미타부처님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미타부처님의 마흔여덟 가지 소원은 전부 다 이루어졌다.

그 말입니다.

 

마흔여덟가지 서원을 세우면서 그 서원 하나하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 이렇게 다짐을 했는데 이미 아미타부처님이 되셨으니 법장보살일 때 세운 마흔여덟 가지 서원은 전부다 이루어졌다 그 말입니다.

이 마흔여덟가지 서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서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이 서원 때문에 우리들이 아미타부처님을 알게 된 거요.

아미타부처님이 유명해진 것은 지금 말씀드린 이 서원 때문입니다.

오늘같이 백중 천도재를 지낼 때, 49재를 지낼 때, 그냥 천도재를 지낼 때에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해서 천도재를 지내는 것도 바로 이 서원 때문입니다.

그 서원이 무엇이냐?

유인물 5번을 보십시오.

거기 보면 제 18원이라 하고 그 옆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염불왕생원이라 되어 있지요?

그 옆에 또 뭐라고 되었습니까?

대본원()

법장보살의 마흔여덟 가지 서원 가운데 열여덟 번 째 서원이라서 18원이라 하는 겁니다.

마흔여덟 개 가운데 열여덟 번째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 내용이 뭐냐?

염불하면 왕생한다 해서 염불왕생원이라 이렇게 이름을 붙인 거지요.

그리고 대본원이란 법장보살의 마흔여덟가지 서원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서원이기 때문에 대본원이라 이렇게 이름 하는 겁니다.

 

얼마나 대단한 서원이길래 이렇게 거창한지 한 번 그 내용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만약 제가 부처가 되었을 때 시방의 중생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여 저의 국토에 태어나고자 열 번 염불하기에 이르기까지 저의 국토에 태어나지 못한 중생이 있다면 정각을 이루지 않겠습니다이렇게 되어 있네요.

무슨 말인고?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극락정토에 태어나고 싶어서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의 그 이름을 열 번 부르기 이전에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이 서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즉 중생이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열 번 불렀는데도 극락왕생할 수 없다면 나는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지 않겠다.

이렇게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법장보살이라 부르지 않고 아미타부처님이라 부릅니다.

즉 법장보살 때 세운 이 서운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래서 우리들 가운데 지금 여기에 계신 그 누구라도 아미타부처님의 세계 극락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면 열 번 부르기 이전에 왕생극락이 결정된다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중생이라면 그 누구나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열 번만 부르면 왕생극락 할 수 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유인물의 여섯 번째를 보십시오.

왕생극락의 자격이 되었어요.

극락에 가는데 어떤 자격이 필요한가?

사람들은 진짜 염불만 하면 갈 수 있습니까.

뭐 다른 게 필요한 게 아닙니까?

이렇게 의심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 의심을 해결해 드리고자 제가 극락왕생 조건, 그 자격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자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무자격이라. 무자격이 무슨 뜻이지요?

자격이 없어도 된다.

자격이라는 말은 곧 조건이지요?

극락에 가기 위한 조건이 있는가?

조건이 있다?

없다?

없습니다.

그 어떤 조건도 필요없다 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생들의 왕생극락은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으로 불사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일이다 그 말입니다. 부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비록 어리석고 업장이 두텁다 할지라도 왕생극락 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아미타부처님께서 당신의 이름 열 번만 부르면 모두 극락에 왕생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이렇게 쉽게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가?

이런 의심을 가질 수 있지만 쉽게 하신 까닭은 특별한 중생이 아닌 뛰어난 중생이 아닌 평범한 어찌 보면 어리석고 업장이 두터운 중생들을 위해서 이런 원을 세우신 것입니다.

만약에 경전공부 잘하고 계율 잘 지키고 정진 잘하고 집에 가서 성도 안 내고 악도 안 쓰고 이렇게 해야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 이렇게 조건을 달아놓으면 나는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분 손들어보세요.

아무도 없잖아요. 아무도 못한단 말입니다.

우리들 역시 그리 잘나지도 그리 못나지도 못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법문시간에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열 번만 불러도 극락에 왕생합니다. 이런 말을 들어도 우리들 역시 평범하고 어찌보면 어리석기 때문에 스님께서 그런 말을 하는데 긴가민가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진짜인가 의심이 생길 수도 있어요.

또는 나는 못믿겠다 이런 믿음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긴가민가 혹시 여러분들 속마음까지 제가 다 들여다 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들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거나 또는 나는 못 믿겠다 하시는 분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여러분들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고 지금 나는 긴가민가 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의심이 떠오르고 있다. 아니면 나는 못믿겠다 이런 마음이 생긴다면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하 아미타부처님께서 의심 많고 업장 두터운 중생을 위해 극락을 건설하셨다고 하더니 그 의심 많고 업장 두터운 중생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였구나. 그러니 의심 많고 업장 두터운 나야말로 극락에 왕생할 인연이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의심이 일어나고 또는 믿는 마음이 안 생기면 바로 그 사람이 극락왕생할 사람이다 그 말입니다.

아무도 말씀 안 하시는걸 보니까 전부 극락왕생 하실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그 누구라도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적어도 열 번 만 부르면 극락에 왕생한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열 번이 우리들이 숫자를 셈할 때 하나 둘 셋 넷 다섯 할 때 그 때 말하는 그 수인가 유인물 7번을 보십시오.

거기보면 일념의( ) 다념의()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일년의란 말 그대로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한 번 부르는 것이고 다념의란 여러번 부르는 걸 말해요.

일념의는 아미타부처님을 지극하게 한 번만 불러도 왕생할 수 있다 이런 입장이고 다념의는 아미타부처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여러 번 가능한 많이 불러야 왕생한다 이런 입장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미타부처님을 얼마나 불러야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이 불러야 된다는 분 손들어 보세요.

한 번 한번이면 되지 하는 분.

유인물 그 밑에 보세요.

괄호 안에 무슨 글자가 들어가야 되겠습니까?

일념즉시무량겁, 그 옆에는 무량원급즉일념.

법성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의 뜻이 무엇입니까?

일념즉시무량겁이 무슨 뜻 입니까? 우리절 법요집에 나오는 대로 말씀드린다면 찰나의 한 생각은 무량겁 세월이고 그랬습니다.

찰나란 아주 짧은 세월을 말하죠.

아주 짧은 한 생각은 무량겁 세월이다 그 말입니다.

무량원급즉일념은 무슨뜻이죠?

무량한 긴 세월은 한순간 생각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짧은 생각도 어찌 보면 아주 긴 세월이고 아주 긴 세월도 아주 짦은 한 순간일 수 있다 그런 말입니다.

법성게의 이 구절의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들 중생의 삶, 우리들의 삶은 어찌 보면 찰나의 생각 생각.

우리들이 지금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잖아요.

그 찰나찰나의 생각들이 한량없이 긴 시간일 수도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뭡니까?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억겁의 세월에 비한다면 정말 지극히 짧은 한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 말입니다.

 

어떤 시간을 놓고 길다 짧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백 년이라는 시간을 놓고 백년을 기다 백년을 짧다 이렇게 말 할 수는 없는 겁니다.

하루살이가 본다면 백년은 어마어마하게긴 세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천년을 산다는 학이 본다면 백년은 짧은 겁니다.

수천 년을 산다는 신선이 본다면 백년도 아주 짧은 겁니다.

우주의 역사에 비한다면 인간의 수명은 정말 눈 한번 깜박하는 그 순간밖에 안 됩니다.

이게 바로 시간의 양면성입니다.

그래서 중용한 것은 한 번이냐 여러 번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미타부처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부르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번이든 여러 번이든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 지극한 마음은 한 순간이든 한량없는 순간이든 끊이지 않아야 된다 그랬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는 지극한 마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뭐라 그랬습니까?

그 밑에 념념불리금색상이라 ~

생각생각 마다 금색상을 떠나지 않는다.

그말 이지요.

여기서 금색상이란 금빛의 부처님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생각마다 아미타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극한 마음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그 말입니다.

이와 같이 아미타부처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부르면 그 어떤 두터운 업장과 번뇌라 할지라도 우리들이 극락왕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 말입니다.

 

유인물 8번을 보세요.

법문도 증간쯤 했는데 중간시험을 한 번 봐야 되겠어요.

제가 항상 수업 때 말씀을 드렸지요?

언제 한 번 시험을 봐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안 나올 것 같애요.

그래서 수업하는 중간에 기습적으로 시험을 한 번 봐야 되겠다.

법문도 법문 중간에 한 번 물어 봐야 되겠다.

그래서 문제를 내 놓은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얼마나 쉬운지 보기가 두 개 밖에 없어요.

찍기 하면 반의 확률로 맞아.

물론 법문을 귀만 열어놓고 있어도 이 문제는 다 맞출 수 있는 거예요.

문제를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다음 중 아미타 부처님의 본원에 맞는 극락왕생은 무엇인가?

1번 자신이 열심히 염불한 공덕에 의해 왕생극락 한다.

2번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의해 왕생극락한다.

정답은 몇 번 입니까?

답은 1번 아니면 2번 가운데 하나요.

주관식이 아니기 때문에.

1번이라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내가 열심히 염불한 공덕에 의해서 극락왕생한다.

2번은 뭡니까?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의해서 왕생극락한다.

이거 헷갈리는 문제인가요?

제가 법문하는 것을 잘 들었으면 헷갈릴게 전혀 없는데요.

 

정담은 2번이죠.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에 의해서 왕생극락하는거요.

아미타부처님의 본원. 본원 서원이 뭡니까?

모든 중생들이 나의 이름을 열 번만 불러도 극락에 태어나도록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미타부처님의 서원의 힘으로 극락에 왕생하는거다.

그래서 혹시 내가 남들보다 열심히 염불하면 극락을 가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조금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열심히 염불하기론 우리절 2층 극락전 카세트를 따라갈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

136524시간 연중무휴로 염불을 하고 있어요.

염불을 많이 한다고 극락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미타 부처님의 힘으로 극락에 왕생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많이 염불을 하겠다, 남들 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 이런 마음이 아니라 극락왕생을 시켜주시는 아미타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을 해야 되는 겁니다.

 

유인물 9번을 보십시오.

우리들 범부중생의 왕생극락이 결정된 까닭? 이렇게 나와 있는데 그 내용이 무량수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법장보살이 이미 성불하여 열반에 드셨습니까? 아직 성불하지 못했습니까? 지금 현재 성불하여 나투고 계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 하셨다. “법장보살은 이미 성불하여 나투고 계시느니라.”

무량수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법장보살은 중생들을 위한 서원을 세울 때 내 이름을 부르는 중생들은 모두 왕생극락을 할 수 있으리라.

만약 못한다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 이렇게 다짐을 하셨지요.

그런데 이미 성불하셔서 아미타 부처님이 되어서 지금도 극락정토에 나투고 계신다.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겁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지금도 극락정토에 나투고 계신다는 것은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리들의 왕생극락을 위해서 염불해야 할 때는 언제라는 얘기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지금 극락국토에 계신다는 말은 우리들이 염불을 해야 할 때는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해야 한다. 그런 뜻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염불을 해야 극락왕생을 위한 염불이 된다 그런 뜻입니다.

아이고 이 다음에 하지요. 시간이 날 때에 하지요. 숨 떨어지기 직전에 하면 되지요.

이런 핑계로 염불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우리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어요.

수 지금 이 순간 말고는 없습니다.

과거는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지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나간 과거에 염불 할 수 있습니까?

안했는데 어떻게 해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염불 할 수 있습니까?

아직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오직 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지금 밖에 없어요.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염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들이 열심히 염불을 해야 하는 까닭을 알아 보았는네 오늘은 백중 초재날이 아닙니까?

오늘은 살아있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모든 영가님들을 위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가님들을 위한 염불의 공덕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영가님들은 이미 몸을 버린 분들이라 몸을 바꾼분 들이라 남은 것은 오직 식 밖에 없어요.

식이 무엇인가 물어보는데 쉽게 말하면 업장입니다. 업장.

살아생전 모든 업이 저장된 것이 바로 식입니다.

 

그래서 영가를 위해서 백중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영가님들이 지은 업장을 녹이는 일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끔씩이 아니라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돌아가신지 49일이 지났는데 49재 다 지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몸 받아서 다른 몸을 받아서 다른데서 태어나셨을 테니까 천도재를 지낼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꼭 있어요.

그런데 영가가 다른 몸을 받았다 하더라도 살아생전 지은 업장은 사라집니까?

안 사라집니까?

안 사라지죠?

지은 업은 안 사라져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돈을 꼬불쳐 가지고 통장거래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통장 뒷면까지 채웠다 그 말입니다.

얼마를 모았는지는 모르겠는데 통장을 바꿀 때가 되었어요.

새통장 바꾸러 가지요? 바꾸면 어떻게 됩니까?

돈이 다 사라집니까?

새통장 제일 첫 면에 뭐가 찍힙니까?

잔액이 찍히지요?

그 잔액이 뭡니까?

지난 통장에서 열심히 모았던 돈 아닙니까?

그게 사라진다면 여러분들 통장 바꾸러 가겠어요?

안 바꾸지요.

그런데 통장에 그전에 거래했던 내용은 싹 사라지고 잔액만 한 줄 딱 찍혀 나오지만 그 잔액은 어디서 온 겁니까?

전에 통장 거래했던 거지요?

 

업이라는 게 바로 그런 겁니다.

그래서 영가가 몸을 바꾼다 해가지고 업이 홀랑 사라지는 게 아니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는 않지요.

업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큰스님 말씀과 같이 영가는 또 몸을 받아 태어난다 하더라도 나와 인연 깊은 곳에 태어나게 되어있다.

나랑 인연있던 영가가 인연 없던 곳에 내어날리 있겠습니까?

인연 있는 곳에 와서 태어난다.

그래서 일가 친척의 몸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일가 친척간의 화목하고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서라도 영가님들의 업장을 구준하게 녹이는 백중 천도재는 아주 중요한 고지요,

한 번 지내고 말것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이렇게 영가의 업장을 녹이기 위해서 백중 천도재를 지내는데 이 천도재를 지내고 여러분들이 지내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천도재 안에 뭐가 있습니까?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는 염불이 들어가 있어요.

아까 제가 법문 시작하기 전에 잠깐 법당을 들러 보니까 열심히 나무아미타불을 하고 계더라고요,

그게 바로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는 염불입니다.

왜 포함 되어 있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왜 천도재에 들어가 있겠습니다?

영가를 천도하는데도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는 염불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극락왕생을 하는데도 나무아미타불이지만 영가천도에도 나무아미타불이다 그 말입니다.

비록 영가는 두터운 업장덩어리 업식만 남아있지만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은 그러한 업장덩어리인 영가조차도 왕생극락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 영가도 결국에는 중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중생이 염불하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 하셨는데 영가라고 해서 왜 못하는냐 그 말입니다.

 

물론 영가님은 식만 남아 있기 때문에 업장만 남아 있기 때문에 본인들이 염불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자기 입이 있어야 염불을 하지요.

그래서 우리들이 와서 재를 올려야 됩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해 주겠는냐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백중날 와서 모든 인연 있는 모든 영가들을 위해서 염불을 하는 겁니다.

천도재를 올리는 것입니다.

오늘 같은 백중날 영가님들을 법당에 불러서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는 염불을 우리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해야 됩니다.

유인물 10번을 보시면

영가의 식() 에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들려주고 지성심(), 신심 (), 회향발원심 ()을 일으키게 한다. 영가가 지심신요() 하여 극락왕생하게 된다.

 

큰스님께서 백중 입재법문에서 말씀하시기를 영가에게는 다섯가지 특성이 있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 가운데 지은선득이라 그러셨습니다.

지은선득 알 지자에 은혜은자 베풀 선자에 득 득자를 써서 지은선득이라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은 영가도 은혜를 알고 은혜를 입으면 덕을 베푼다 그런 뜻입니다.

즉 우리들이 영가를 위해서 지극정성으로 아미타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면 영가도 지극한 마음을 알게 된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염불하는 우리들의 지극한 마음이 영가에게 전해지면 그 순간 영가의식에 지성심이 일어난다.

지성심이란 진실한 마음입니다.

진실한마음.

그러면 영가가 심신을 일으키게 되는 거지요.

깊이 믿는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즉 영가 역시 아미타부처님의 염불원력을 깊게 믿는 것이다.

그래서 회향발원심이라.

영가도 극락에 왕생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어 업장을 소멸하게 왕생극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가님께서 우리들과 맺고 쌓은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왕생극락 하시는 자체가 우리들에게는 큰 덕이 되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서 머무는 것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덕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여섯 글자를 지극한 마음으로 부르는 공덕은 한량없이 큽니다.

제가 오늘 몇 가지 중요한 것만 말씀드려서 그런데 일 년 내 내 얘기하라면 얘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리들이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그 순간 우리들의 왕생극락이 먼저 결정이 됩니다.

그리고 영가를 위해서 나무아미타불 하면 지성심, 심신, 화향발원심을 일으켜서 업장을 소멸하고 마침내는 왕생극락 할 수 있데 된다 그 말입니다.

특히 오늘같이 백중 기간에 나무차미타불을 염불하는 일은 염불하는 나 자신과 영가님들에게 모두 공덕이 되는 일입니다.

나와 남이 모두 이로운 일이다.

나와 남이 모드 이로운 일을 뭐라 그럽니까?

불교에서 있어보이는 표현으로 자리이타라 .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백중 기간에 백중 천도재에 참석하셔서 열심히 염불하시는 것은 나에게도 이롭고 영가님에게도 이롭기 때문에 자리이타의 수행이라 부를 수가 있다 그 말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평소에 하는 기도는 대부분 자기 자신을 위하는 거지요.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의 수행은 평소에는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백중기간에 천도재에 동참하셔서 나무아미타불 열심히 부르고 금강경 독송하는 것은 전부 뭡니까?

자신에게도 이롭고 타인에게도 영가에게도 이로운 일이기 때문에 자리이타의 수행입니다.

아주 수승한 수행입니다. 아주 뛰어난 수행이라는 말입니다.

 

유인물 11번을 보십시오.

그 내용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여기에서 열흘 밤낮으로 선을 닦는 일은 다른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서 천년 동안 선을 행하는 것보다 뛰어나느니라.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세계의 부처님 국토에는 선을 행하는 이가 많고 악을 행하는 이는 적으며 복덕이 저절로 이루어져 악을 지을 만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지만, 오직 이 세상에는 악을 짓는 이가 많고 복덕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니라.“ - 무량수경

역시 무량수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의 뜻은 무어냐?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자리, 우리들이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염불하는 공덕이 가장 뛰어난 공덕이다. 이 말입니다.

어디 다른데 가서 염불한다고 공덕이 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 기도발 좋은데 가서 염불하면 공덕이 더 있지 않겠습니까?

어디 용한데 가서 기도하면 공덕이 더 있지 않겠습니까?

다 필요 없고 지금 이 자리,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는 염불이 가장 큰 공덕이다 이 말입니다.

 

자신의 현실을 피하지 않고 지금 맞닥드린 이 상황에서 염불수행하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은 없다.

지금 내거 처한 현실이 힘들고 괴롭고 바쁘고 하니까 나중에 좀 덜 힘들고 덜 바쁘고 형편 좀 나아지면 그 때 수행 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셨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비록 지금 이 순간이 비록 힘들고 괴롭고 바쁘다 할지라도, 그래서 수행을 할 수 없을 지라도 그 여유가 없는 가운데서 수행하는 일은 여유가 있을 때에 수행하는 일보다 훨씬 뛰어난 수행이 된다 그런 내용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유가 없을 때에 기도수행하려면 보통 마음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바빠 죽겠는데 힘들어 죽겠는데 괴로워 죽겠는데 수행하려면 보통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소위 독한 마음가지고 수행을 해야 되는데 그 독한 마음이 표현에 좀 그렇지만 그 독한 마음이 바로 간절한 마음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수행을 하는데 어찌 공덕이 뛰어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유인물 11번의 그 밑에 무어라 적혀 있습니까?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중생의 무명번뇌, 고통속에서 행하는[염불, 수행, 기도, 공부, 봉사 등]이 가장 뛰어난 공덕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닦고 회향하면 자신과 타인을 위한 가장 수승한 공덕행이 되는 것이다. 대승보살도

 

~ 참 거창한 말이 나왔습니다.

따라서 백중영가천도, 이 바쁘고 괴롭고 힘들고 여러분들이 여유가 없는데 그 와중에서도 백중 천도재에 참석하시는 그 공덕은 대승보살도의 수행공덕과 같다 그 말입니다.

?

어려운 환경. 바쁘고 살기가 어렵고 또 본인이 힘들고 괴롭고 한 와중에서 오셨다는 것은 아주 지극한 마음, 간절한 마음에서 오셨기 때문에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면 반드시 공덕이 됩니다.

또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면 나와 영가님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대승보살도의 수행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백중영가천도는 보살도의 실천이다.

나만 좋자고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영가님도 좋기 때문에 바로 보살도다.

 

지장경의 말씀을 빌린다면 오늘 여러분들이 백종 초재에 참석하신 이 공덕.

천도재에 동참하시고 대승경전 법문을 들은 이 공덕 가운데 무려 7분의 6이 영가님도 아니고 여러분들이 가져가는 공덕입니다.

그리고 7분의 1이 영가님의 공덕이 됩니다. 영가님이 좀 적게 가져가시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결코 적은 공덕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지장경의 이 말씀을 본다면 백중은 매년마다 돌아오는데 언제까지 백중 천도재를 지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한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천도재의 공덕 가운데 자그만치 7분의 6을 자기가 가져가는데 매년 지내면 7분의 6을 매년 가져 가는 건데 언제까지 지내다니요.

그냥 쭈욱 계속해서 지내는거지요.

그리고 평소에 우리가 영가님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백중 때에라도 항상 동참하셔서 영가님들을 위한 기도도 같이 해 주시는게 좋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백중 천도재는 살아있는 우리들과 돌아가신 영가님들, 그리고 이미 새로운 몸을 받아서 가까운 인연처에서 살고 있는 영가들이 모두 가피를 입어서 업장을 소멸하고 왕생극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대승보살행이다.

아주 거창하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특히 백중기간동안 천도재를 지내면서 우리들과 영가님들의 업장소멸을 위해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지극정성으로 염하면 한 번 염불할 때마다 80겁 동안에 지은 업장을 소멸 할 수 있다. 이렇게 경전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또 저한테 오셔가지고 묻는 분들이 매년 많아요.

한 두 분이 아니라.

스님. 제가 관세음보살기도를 하고 있는데 스님 법문들어니까 아미타불 기도로 바꾸어야 되겠습니다. 그래도 되지요?

그러면 제가 무어라고 말씀을 드려야 되겠습니까?

뭐라고 말씀드려야 되겠어요.

지장경에 나오는 또 유명한 구절을 또 말씀을 드려야 해요.

매 년 해마다 말씀드려야 됩니다. 이 구절을.

지장경에 어떤 구절이 있는가 하면 이런 구절이 있어요. 여러분 잘 들어 보세요.

누군가 죄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악도에 떨어지거나 혹은 지옥문 앞에 이러렇을 때에 만약 한 부처님의 이름과 한 보살의 이름 대승경전에 있는 글귀 한 게송만이라도 생각하면 이 모든 중생을 구제하신다.

그랬습니다. 무슨 얘기인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께서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여기 백중천도재에 오신 분들 가운데는 악도에 떨어지거나 지옥에 떨어지는 분들은 한 분도 없을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겁니다만 혹여 나쁜 곳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나쁜 곡에 이러렇을 때에 부처님, 아무 부처님 이름이나 아무 부처님도 상관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부처님 그 어떤 부처님도 상관없습니다.

또는 보살님,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 어떤 보살님도 상관없어요. 혹은 대승경전. 부처님, 보살님 이름도 모르는 분이 대승경전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건 좀 아니라고 보는데 아니면 여러분들 가운데서 대승경전에 나오는 한 구절을 기억하는 분이 있잖아요.

여기 계시는 분들은 다 한 구절씩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승견전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이 뭡니까?

여시아문이죠?

여시아문으로 시작하지요.

여시아문 이 한 구절을 입으로 말하지 않고 생각만 해도 구제된다 그랬습니다.

이 말의 깊은 뜻은 부처님이름 나무아미타불, 석가모니부처님. 미륵부처님, 약사여래부처님. 부처님의 이름 또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님들의 이름 또는 경전의 한 구절, 아까 웃자고 여시아문 제가 말씀드렸지만 금강경의 사구게도 있지 않습니까?

범소유상 개시허먕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이런 구절,

그런데 여러분들이 구제되는 힘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글자에 여러분들이 구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내가 부처님 이름 부른다고 나무아미타불 그 여섯 글자에 내가 악도에서 구제되고 지옥에서 구제되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세음보살 그 이름에 내가 지옥에서 구제되고 악도에서 구제되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글자는 글자일 뿐이요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간절하게 부르는 그 마음에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 보살님 경전 한 구절을 부르면 구제 된다는 그 말입니다.

어떤 부처님이든 상관없고 어떤 보살님이든 상관없고 어떤 경전이든 상관없다고 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 종류가 필요한 게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 이름이 중요하고 보살님 이름이 중요하고 경전 글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간절하게 부르는 그 마음이 중요하다는 그 말입니다.

중생이 구제되는 것은 글자에 의해서 구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를 때에 간절한 마음에 의해서 구제된다.

그러니까 백중 천도재 지낼 때에 나무아미타불 한다고 해서 평소에 하던 기도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무아미타불 그 글자에 기도가 있는 게 아니요. 관세음보살 그 글자에 기도의 힘이 있는 게 아니다 그 말입니다.

그걸 부르는 우리들 마음에 기도의 힘이 있는 겁니다.

 

옛날에 한 노보살님께서 산 속 암자에서 스님을 한 분 모시고 살았습니다.

스님께서 항상 참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 노보살님께서 나도 스님께 화두 한 번 타서 참선 좀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님께 가서 스님 저도 화두 한번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보살님 그동안 열심히 절에서 살면서 부처님께 공양도 많이 올리고 하셨으니까 제가 오늘 화두 하나 드리겠습니다.

즉심시불 ~

즉심시불 화두를 제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노보살님께서 귀가 좀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즉심시불 했는데 이 노보살님은 짚신시불 이라 이렇게 알아들은 겁니다.

이 노보살님이 처음에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 스님께서 나 한테 장난치나?

짚신이 왜 부처인고. 짚신시불이라.

그런데 스님께서 아주 진지하게 화두를 주니까 야 이거는 스님이 나를 놀리려고 그냥 한 게 아니가 보다. 진짜 화두인가보다 해서 그날부터 이 노보살님은 짚신도 부처다~ 짚신도 부처다~ 짚신시불이라 .

하루종일 간절한 생각에 화두에 매달렸던 겁니다.

어느날 이 노보살님께서 아! 짚신시불이라. 화두를 깨진거요. 짚신이 부처라니 내가 그 뜻을 알겠다. 삼천대천세계가 전부다 부처로구나. 하면서 스님께 달려가서 스님 제가 화두를깼습니다. 그랬습니다.

스님께서 아이고 보살님 그 화두를 깨셨다니 한 번 말씀해 보십시오.

스님 짚신도 부처가 맞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이 깜짝 놀라서 보살님 제가 즉심시불이라 했지 언제 짚신시불이라 했습니까? 그러자 보살님께서 뭐라고 했겠습니까?

스님은 즉심시불 하이소 저는 짚신시불 할랍니다.

 

글자에 달린 게 아니에요.

글자에 달린 게 아니라 바로 간절한 그 마음에 달린 겁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을 하든 나무아미타불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 마음이 간절하고 그 마음이 진실 된다면 짚신을 잡고 화두에 매달려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듯이 그 어떤 보살님 그 어떤 부처님 그 어떤 경전 구절이라도 우리는 다 우리 스스로를 제도하고 영가님을 제도하여 공덕을 짓고 왕생극락 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오히려 이 백중기간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하면 평소에 내 기도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마지막에 있는 언제까지 영가를 위해 천도할 것인가? 언제까지 해야 되겠습니까?

자타일시성불도 할 때까지 백중 천도는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깨닫고 남도 깨달을 때까지 영가천도를 해야 됩니다.

단순히 공덕 짓고 복 짓는 데서 끝날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전부 성불해서 부처님 되는 그날 가지 영가를 천도하고 자기 자신도 제도를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계속하라 그 얘기입니다.

 

마지막 그 구절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무량수경에 나오는 게송인데 한 번 멋있게 읽어보겠습니다.

설령 온 세계가 화염에 휩싸일지라도

기필코 헤쳐 나가 법을 듣고,

반드시 불도( )를 이루어

생사의 세계 떠도는 중생을 널리 구제해야 하리라

밑에 한자도 한번 읽어볼까요.

한자는 같이 읽자고 제가 한글로 토도 달아놓았습니다.

.

무량수경에 나오는 경전의 말씀입니다.

사실 요즘같이 무더운 날이 화염에 휩싸인 세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요즘같이 덥고 습한 날이 화염에 쌓인 세계죠?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래도 그 무더위를 뚫고 좀 멋있게 표현하면 화염을 뚫고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백중 초재에 여러분들께서 오신 것은 부처님의 정법에 따라 나 자신과 영가님들의 업장을 녹이고 공덕을 쌓기 위한 보살도를 실천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무더운 날씨와 주말 휴가철임도 불구하고 이렇게 백중천도재에 많이 참석 하셔서 선망부모님과 인연영가님들의 업장소멸과 왕생극락을 위해 열심히 여러분들이 기도하신 그 공덕으로 하시는 일들이 잘 되고 여러분들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법문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백중경전 산림법회 초재가 원만하게 회향될 수 있도록

처처에서 수고 해 주신 법우님들이십니다.

 

 

 

 

 

 

 

 


 한국불교대학 25주년 기념 음악회'만배의 신심으로' 추진위원회의
 나야 나, show time~~~2017년 어린이법회 1박 2일 여름불교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