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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강 특강 <철운 큰스님 법성게 요약 강의 >
작성자 진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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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년 3월 20일 화요일 오전 11시,

우리절 한국불교대학대관음사 옥불보전에서는

2년차 법우님들의 개강 특강으로 법주사 강주를 역임하시고

평택 도원사 주지로 계시는 철운 큰스님을 모시고

법성게 강의를 청해들었습니다.


새학기의 시작에 앞서 법성게 특강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주신

철운 큰스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철운 큰스님 법성게(法性偈) 특강 ★



방금 회주스님께 직접 소개를 받은 평택 도원사에서 온

철운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여기서 직접 보고 있는 분들도 반갑고 멀리서 화면을 통해

보고 계시는 분들도 모두 반갑습니다.

오늘은 제가 한국불교대학大관음사에서 1년 공부하고 2년차 공부하는

분들을 위해서 특강을 하러 이렇게 왔습니다.

먼저 오늘 특강의 내용을 조금 정했는데 법성게(法性偈) 강의로써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법성게 강의를 하면서도

또 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그런 마음가짐이나 의미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또 제가 한국불교대학에 와서 느낀 것들도 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여기에 몇 번 왔는데 올 때마다 헷갈려요.

오늘도 여기 입구에서 방을 찾아가는데

못 찾아가지고 전화를 하고 그렇게 찾아갔습니다.

여러분들은 헷갈리지 않고 잘 다니죠?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고 미로처럼 알 수 없는 길을 가는 것 같고..

길 찾아가는 게 꼭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해 가는 과정인 거 같아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훌륭한 도량에 와서 제가 이렇게 여러분과 같이

부처님 말씀을 할 수 있는 것도 영광이고 이 모든 것은 회주스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 회주스님에게도 고마운 말씀 전합니다.

오늘 특강은 법성게인데 법성게(法性偈)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법성게는 특히 제사 지낼 때, 천도재 할 때 끝날 때 이렇게 돌면서

많이 독송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님들이 지은 게송 중에서는

아마도 법성게가 제일 많이 독송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법성게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늘 특강 주제를 잡았습니다.

법성게를 여러분들은 안 봐도 다 암기하고 외울 수 있으니까

그냥 하겠습니다.




우선 법성게라는 말에 대해서 설명 드릴게요.

법성에서 법(法)은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 그냥 진리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마음이나 물질이나.. 그리고 불법승 삼보 할 때는 또한 법이고

성(性)이라는 것은 마음속의 성입니다.

진리의 성인데 성은 마음의 근본 바탕 그런 뜻이고

게(偈)라는 것은 인도 말이에요.

우리말이 아니고 중국말도 아니고 인도에서 온 가타

그런 노래를 게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송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인도 말과 중국말을 합쳐가지고 송, 게송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래서 법성게 하면은 법은 진리로 보고 또한

성품은 바탕으로 보고 게는 노래다 송이다 그렇게 본다면

진리의 근본을 노래한 것이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이 법성게를 제수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법성게는 어느 스님께서 지으셨죠? 네 의상스님께서 지으셨어요.

의상스님께서 경주 황복사에서 열다섯 살에 출가하셔서 25세에

중국으로 가다가 그만 못가고 다시 36세에 혼자서 중국으로 갑니다.

같이 가던 원효대사는 돌아오고

의상스님 혼자서 중국으로 가는데 그 때 중국으로 배를 틀어 갈 때

중국 서한에 가면 종남산이라는 큰 산이 있고

거기에 지상사가 있고 거기에 큰 스님이 계셨는데

지암이라는 큰 스님이 계셨어요.

이 스님이 어느 날 꿈을 꿨는데 해동, 그러니까 우리나라죠.


우리나라에서 큰 나무가 자라나서 중국 종남산을 다 덮어버린다는 거예요.

나무가 자라나서 그 그늘이 종남산을 다 덮는 그런 꿈이었는데

또 그 나무에 봉황이 날아왔는데 올라가 보니까 봉황 집에 알이

들어 있더라 그래요. 그래서 지암스님이 해동에서 어떤 귀인이 이 절로

찾아오겠구나 싶어서 대중들을 시켜서 도량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는 거예요.

저녁이 되니까 진짜로 그 절에 의상스님이 오고 잘 맞이했어요.

그렇게 해서 의상스님이 거의 한 7-8년 동안 지암스님을 모시고

화엄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지암스님이 연세가 드셔가지고 이 화엄경을 누구한테

물려줘야 하긴 하는데 그 뜻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 해서

의상스님한테 시험을 치는 거예요.

어떤 시험이냐 하면 화엄경의 대의를 적어오너라 그런 거예요.

그 말씀을 듣고는 의상스님이 좀 막막하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꿈을 꾸는데 신인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노인분이 나타나서 꿈에 말씀하기를 화엄경의 대의를 적어라

그리고 그 깨달은 바를 세상에 펼쳐라 그런 말씀을 하시고 가고

그 다음에는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다니는 선재동자가 꿈에 나타나서

의상스님에게 총명탕이라는 약을 갖다 주어서 그 약을 받아먹고

또 한 꿈을 꾸었는데 청의동자가 나타나서

천의동자는 문수보살의 시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선재동자는 관세음보살님 대신해서 오는 거고

청의동자는 문수보살님의 동잔데

청의 동자가 나타나서 비기(秘記)를 전해줬는데 그 비기가

뭔지는 모르지만은 화엄경의 대의를 적는데 붓과 종이를 전해줬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어요.

그래서 의상스님이 이 세 가지 꿈을 꾸고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고 신비한 꿈 인 게

뭔가 뜻이 있는 꿈이구나 생각하고

지암 스님께 찾아가서 꿈 얘기를 하니까

자기는 그러한 신비로운 꿈을 한 번 밖에 못 꿨는데

의상스님은 세 번이나 꿨으니까 이제 화엄경의 대의를

잘 적을 수 있겠다 싶어서 잘 적어보라 했어요.

그래서 의상스님이 열심히 화엄경을 찾아가면서 내용 중에서

발췌해서 열권을 만듭니다.


의상스님이 본 화엄경은 60권이죠.

60권 화엄에 34품, 요즘에는 80권

화엄경을 많이 보는데 80권 화엄에는 39품 그렇게 되고

글자 수로는 587261자인가 그래요. 좀 많지요? 오십팔만 자가 넘으니까..

이거 엄청난 양입니다. 한문으로 얘기해서 그렇게 됩니다.

한글로 번역하면 한 세 배는 더 늘어나겠죠.

반야심경은 한 260자 되고

금강경은 5,100여자 되고 원각경은 11,000여자 되고

법화경은 69,000~ 한 70,000자 되고

그 다음 화엄경은 587261자가 되니까 분량이 엄청나게 많잖아요.


어느 것 글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그래도 의상스님이 거기서 발췌해서 60권을 줄여서 열권을

만들어서 가져갔어요. 그런데 지암스님이 그것을 보시더니

너무 많다 그래요. 너무 많아서 누가 이걸 공부 하겠나

좀 더 줄여라. 그리고 이것은 너무 많아서 번거롭고 하니까

아예 태워버려라 그래요.

그래서 의상스님과 지암스님이

저 깨끗한 데 가서 열권의 책을 불에다 넣고 태웠어요.

그 때 태울 때 의상스님이 원을 발휘한 겁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화엄대의를 적고자 하오니

나에게 어떤 좋은 뜻을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태웠는데

다 타고 나서 보니까 안 탄 글자가 있는 거예요.

210자가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안 탄 글자를 모아서 다시

불을 붙여서 태우려고 했는데 그래도 타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글자가 화엄경의 대의를 나타내는 글자다 생각하고

그 210자를 가져와서 의상스님께서 한 석 달 동안 밤낮으로

글자를 조합해서 노래를 짓습니다. 게송이죠.

그래서 지은 게송이 210잔데 7자 해가지고 30구,

210자의 게송을 만들었고

그 다음에 이 게송을 가지고 법계도(法界圖) 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인사 같은 곳에 가면 행사 때 마당에 법계도 돌잖아요.

의상조사의 그 법계도입니다.


그래서 글자 글자마다 법계도에 맞게 배치를 했는데

이 법계도라는 것이 卍(만) 자 같이 생겼는데 각이 54개가 됩니다.

54각에다가 배치하기를

승(僧) 법(法) 불(佛)이 이렇게 가운데 이렇게 와 있어요.

법계도 한번 보시면 가운데 쪽에 중(衆),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할 때 중자가 들어가 있고

그다음에는 법(法)자가 들어가 있고 그 다음에는

불(佛)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춰가지고 중은 승이겠지요.

승, 법, 불 이렇게 해서 각을 만드는데 이 54각은 53선지식을 말해요.

각을 돌 때마다 53선지식을 만나는 것이고 54각을 왔다 갔다 하면

108각이 되는데 이 108각은 선지식을 만날 때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번뇌 망상을 제거해서

우리 무명업장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이 법성게를 돌면 53선지식을 만나고

또 우리 마음속에 있는 번뇌, 망상, 또 묵은 업장이 다

소멸 될 수 있어서 결국은 우리 중생이 부처님의 자리에

이를 수 있는 그런 게송이다 그럽니다.



그래서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할 때 중자하고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할 때 법자하고

제일 끝에 구례부동명의불(舊來不動名爲佛) 이렇게 나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이 법성게는 우리 중생이 이 법을 통해, 부처님의 법을 통해서

결국은 불(佛)이 된다는 거예요.

우리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배우고 수행해가면

끝에 가서는 부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다 그래서 법성게를

많이 읽으면 우리 중생들이 결국 부처님의 자리에 가서

앉을 수가 있다 그런 내용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많은 분들이 와 있잖아요.

화면을 통해 보는 분들도 있고,, 그런데

이 불교를 공부하고 신행하는 분들에게

최종의 목적지는 무엇이겠어요?

깨닫는 거지요. 부처님이 되는 거죠.

여러분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을 거예요.


저는 시골의 작은 절에 주지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보면 집안일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지요?

신해행증(信解行證)인데 그냥 믿음으로 오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 많이 하고.

축원하고 기도하고 그렇게 많이 하게 되는데

이 신(信)의 단계를 벗어나서 해(解)의 단계로 가야돼요.

그 다음에 행(行), 수행하고 증득(證得),

부처님의 자리를 증득해야 된다 그럽니다.


화엄경에서는 신(信)을 아주 중요시해요.

우리가 기도하는 분들, 기도하면 영험 있나 어쩌나

이런 말도 하고 그러는데

기도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고 또 그에 대한 보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 우리가 그걸 이제 신행한다 하는데

절에 오는 분들의 마음 바탕에는 신(信)이 있어요.


기도한다는 것은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의지하는 거예요.

나는 오직 부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겠습니다,

그 마음이 있는 걸 기도라고 하는데 말이 기도니까

빈다는 뜻이 들어가는데 우리 불교적으로 말하면

발원한다는 거예요. 발원.. 원을 바란다 또 축원 한다 이 축원하고

발원하는 것이 절에 오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고

바탕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 불교가 있게 되는 힘이 되는 겁니다.


저도 주지 살다보면 대부분 오시는 분들이

내가 부처님 교리를 배우러 오겠습니다.

깨달아서 부처가 되겠습니다. 그런 분들보다도

우리 집에 누가 아프니까 낫게 해주십시오.

우리아들 취직되게 해주십시오. 결혼하게 해주십시오.

공부 잘하게 해주십시오. 시험 합격하게 해주십시오,

사업이 잘되게 해주십시오. 뭐 이런 원을 위해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그런 분들에게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런 게 바탕이 되어가지고 결국 부처님을 의지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오신 분들, 또 멀리서 듣는 분들은 조금 그 단계를

벗어나서 아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번 알아보아야 되겠다,

맨날 스님 말만 들을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경전을 봐야되겠다 그런 분들이

여기 공부하러 오신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기도도 열심히 하지만 그 다음은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알려고 노력해야 돼요.


이렇게 알려고 노력하기 위해서 지금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강의도 듣고 가르침을 배우고 그러는 건데

부처님의 마음에서는,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워서 다 도와주시지만은

내 스스로가 지혜를 얻고 알아라 이렇게 하는 게

부처님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 열심히 하고

그 다음에는 공부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수행해서 깨달음을 증득해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나타내기 위해서 법성게가 이렇게 저술 되었습니다.




처음에 법성게 게송을 보면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잖아요.

이 법이라는 것은

범위가 엄청 넓어서 법계(法界) 이렇게 말합니다.


법계는 모든 존재하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또 손으로 촉감하고 생각에 담겨있는 기억, 추억, 이것이 다 법계예요.

우주법계라고 그럽니다.


보이지 않는 허공계 또한 법계입니다.

이 화엄에서는 이 법이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근데 이 법성(法性) 할 때는 법계의 성품인데 법성 하는 것은

법계의 성품, 마음이잖아요.

그러니까 무슨 산의 마음 물의 마음 하늘의 마음 이렇게 하는데

화엄경에서는 이 법은 법신불(法身佛) 이렇게 봅니다.

진리의 부처님..그 법성은 법신불의 마음이다 이렇게 보면 돼요.


법신불을 또 달리 말하면 법성을 불성(佛性)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부처님 입장에서 볼 때는 불성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우리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자성(自性)이 되는 겁니다.


똑같이 성이 들어갔잖아요. 법성원융 할 때 법성이 들어가고

법성은 진리의 입장에서 보는 마음이고 불성 하는 것은

부처님 입장에서 보는 마음이고

자성 이라는 것은 우리 중생심 속에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성이 들어가는데

법신불의 법성 하면 좀 어려운데 불성 하면 조금 이해가 되지요?

불성이라고 보면 됩니다. 법성이 불성입니다.


또 내 자성이 되고 내 마음이 되고, 그 바탕은 모두 똑같은 거지요.

그리고 뒤에 진성신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할 때는

진성(眞性)이라고 말하거든요. 진여라고 그러잖아요.

진여자성(眞如自性),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그러한 깊은 단계의 마음자리는 우리 중생들의 언어로써

표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법성원융무이상이라는 것은 법신불의 마음은

원융해서 둘이 아니다

또 달리 말하면 불성은 부처님의 그러한 마음 바탕은

원융해서 둘이 아니다

또 달리 말하면 우리의 자성은 원융해서 둘이 아니다

둘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라는 거지요. 한 덩어리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유식에서

마음이라는 말도 쓰고 의(意)라는 말도 쓰고 식(識)이라는

말도 쓰고 그러는데 불성하고 법성하고 자성하고 진성

이런 말을 할 때 이 성은 그런 어떤 우리 생각을 떠나있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되느냐 하면

진공묘유(眞空妙有)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진공 가운데 묘유라는 거예요. 진공가운데 묘유라..

진공이면 진공이지 왜 거기다 묘유를 붙입니까?

그런데 진공유라고 안하고 묘자를 붙였어요. 진공묘유..

근데 묘(妙)자가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묘’자가 들어가면 우리 중생의 경지가 아니고

부처님의 경지라고 보시면 돼요.

묘하다는 것은 중생들이 쉽게 알 수 없는 경지가

묘자가 들어가는 거예요.


진공, 진실로 공 하면은 공한 것이지 진공묘유라는 말에

왜 유가 있는 거예요? 묘가 있다는 거죠.

우리는 모릅니다. 부처님은 압니다. 유불능지예요.

또 어떤 책 제목을 보면 텅 빈 충만 이런 말이 있어요.

텅 비었으면 빈 거지, 거기에 또 뭐가 충만해 있다는 건가?

이것은 텅 빈 충만, 또 진공묘유, 묘하게 있는 유,

불성이라고 보면 돼요. 법성이고 자성이고..


또 어떤 스님들은 공적영지(空寂靈知) 이렇게 말합니다.

공적영지다 공허하고 적(寂) 고요하고, 공적한데 그 속에

신령스러운 알음이 있다 지(知)가 들어있다는 거죠.

공이면 공이고 알은 것이 있는 것은 있는 것이지

우리 중생들은 이분법으로 나눠보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됩니다 그게.

그러나 부처님이 볼 때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하나예요.

하나로 보기 때문에 우리가 성을 이해할 때는 진공 속에 있는데

묘하게 있다 이 묘자는 부처님이 아는 경지이고

텅 빈 충만이다 텅 빈 가운데 뭐가 충만 되어 있다.

공적영지, 공허하고 고요한 가운데 알음알이가 있다

이렇게 성을 이해하면 돼요.



그런데 그것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 허공을 알면 돼요.

약인욕식불경계若人欲識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

이렇게 화엄경에 말했거든요.


부처님의 그러한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 중생들이

이 허공 같은 마음을 생각하면 된다는 거예요.

우리 허공이 텅 비어있지만 그 속에는 온갖 변화가 다 있잖아요.

또 우리가 물질과 허공을 나눠서 보는데 이 물질이라는 거

여기에는 컵이라든가 돌이라든가 물이라든가 바람이라든가

불이라든가 본래 본래의 바탕을 찾아 가면은 그 근원을 찾아 가면

어디서 왔느냐 하면은 허공에서 왔다 그래요.


능엄경에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들은 다 공을

의지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면 허공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허공은 부처님의 각에서 생겼다 하잖아요.

무변허공 각소현발(無邊虛空 覺所顯發)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무변허공이 다 각에서 생겨났다 그래서 이 각은 묘각입니다.

묘자가 들어가는 각이에요.


좀 어려운데 법성은 원융하고 무이상, 둘이 아니고 한 덩어리다 그래요.

제가 또 전에도 이런 법성게를 강의 한 적도 있는데

얘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우리 절이 어떤 마을의 가운데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옆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분은 젊어서 다른 종교를 믿으면서 청년회 활동도 하면서

뭐 열두 제자를 만들어서 아주 열심히 활동을 하고 그러다

나이가 들어서 잘 못 가고 이사를 오다 보니 절 옆으로 온 거예요.

어느 날 보니까 목탁소리가 나고 염불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그래서 절이 있구나 생각은 했어도

안 갔었는데 초파일이 되니까 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또 어느 날 낮에 보니까 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자랑도 하고

그러니까 궁금했는지 절에 왔어요.

와서 보니까 뽑기 같은 걸 하더니 염주도 주고 단주도 주고

액자도 주고 그러더래요. 나무 밑에 앉아있으려니

4학년짜리 어떤 꼬마가 뽑기권을 하나 주고 갔는데

자기 번호가 딱 뽑혔다는 거예요.


그래서 참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나갔는데 액자를 하나 주는데 보니

만복운집(萬福雲集) 이라는 글자더래요.

그래서 참 좋은 인연이다. 만복운집, 참 뜻이 좋다고 생각해서

아주 기분 좋게 집에 가져가서 걸어놓고 내가 무슨 절하고

인연이 있을까? 내가 절에 처음 갔는데 뽑기에 당첨이 되어가지고

만복운집 갖다 놨다 그러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걸 갖다놓고 나서는 자기 마음이 참 편안해지고

아들딸들이 하는 일들이 다 잘 된다는 거예요.

일일 술술 잘 되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한 4-5년 지났는데 지금은 한 85세쯤 됐어요.

자기가 교화한 12제자 다른데 다니던 친구들은 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는 거예요.

문득 생각하기에는 친구들이 다 가고 나 혼자 남았다

그 어떤 인연인가 생각하니 자기 스스로 그러는 거야

내가 이 절에 와가지고 인연이 되어서 만복운집도 갖다놓고..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은 자기가 덤이다

그렇게 생각이 들더래요.


지금은 또 어디 사느냐 하면 저 어디 산 좋고 물 좋은 별장에 가서

지키고 있는데 요즘에는 매일 불교방송과 티비만 들어놓고

그것만 보고 있대요.

책도 불교 책만 읽고 그러다 보니까 옛날에는 불교가

안 좋은 종교라 생각하고 없어져야 된다고도 생각하고 그랬는데

점점 환희심이 나고 그래서 자기가 지금 산속 생활하고 있는

이 모습이 전생에 자기가 스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사는 것도 절 가까이 오게 된

부처님의 은혜고 불교방송을 통해서 매일 법문을 듣는 것도

그렇게 환희심이 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가끔씩 전화가 옵니다. 그렇게 좋다고,

스님 만나서 너무 좋다고 고맙다고..

그리고 또 그 분이 하신 말씀이 어머니가 계셨는데

그동안 제사를 안 지냈다는 거예요.

그게 평생 살면서 마음에 걸렸는데 지금은 꼭 명절 때가 되면

절에 와서 제사를 지냅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제가 법성게 하는 걸 들었다는 겁니다.


법성원융무이상 이 말이 그냥 가슴에 와 닿았대요.

자기가 그동안에 믿던 종교는 원융이 아니고 오로지

본인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그냥 이단이라든가 다르게 생각하고

수행하지 않는데 불교는 가르침을 보니까 불성, 법성은 원융하다.

둘이 아니다 진리가 둘이 아니다 이런 가르침에

아주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다른 종교 믿을 때 하던 금액만큼 우리 절에

시주하겠다고 하셔서 감사하다고 삼백세까지

오래오래 사시라고 축원 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구절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편하게 해줍니다.

법성원융무이상.. 그래서 우리가 법성게가 30구 210자 되는데

그 내용을 알기가 참 어려워요.

저도 강원에서 스님들하고 같이 강의하면서 법성게를 강의하러 들어갔어요.

잘 모를 때 법성게를 보니까 아주 캄캄 하더라고요.

강의하기가 자신이 없는 거예요.

오늘 법성게 특강합니다. 해놓고는 도무지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법성은 원융하다] 그 말 하고 그 날 강의를 마쳐버렸어요.

그랬더니 우리 학인스님들이 최고의 명 강의를 하셨다고

그랬다 하시더라구요.^^*


법성게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군더더기가 되어버려요.

법성은 원융하다.

불성은 원융하다.

자성은 원융하다. 이 말을 마음속에 새기면 됩니다.


조금 더 붙이면 법성은 원융 무애하다.

걸림이 없다는 거예요. 어디에서나.

또 붙이면 불성은 원융무애하다.

또 붙이면 자성은 원융무애하다 걸림이 없다.

그리고 조금 더 붙이면 원융무애해서 둘이 없다,

둘이 없다 라는 것은 조금 어려운 말이에요.

한 덩어리라는 거예요. 허공은 나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덩어리라는 거지요,


그래서 제법(諸法)은 부동본래적(不動本來寂)이라는 거죠. 모든 법은..

근데 이 법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지수화풍도 되고

이 법을 불이라고 본다고 했잖아요.

제법이나 제불이나 모든 부처님은 부동이에요.

본래 그 자리에 있어서 고요한 자리에 계신다는 거예요.

우리 부처님은 이항처차보리좌입니다.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화엄경에 그런 게송이 있는데

우리 부처님은 이렇게 중생 전에 나타납니다.

인연 따라 나타난다고 그랬잖아요.

수연부감미부주 하잖아요.

인연 따라 나타난다는 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부처님을 만나기 위한 인연을 지어야 돼요.


어떻게 짓느냐 기도해서 짓고 염불해서 짓고 경을 보고 짓고

참선해서 짓고 이렇게 부처님 만나기를 인연을 지어야

수연부감 한다잖아요. 감응한다잖아요.

그렇지만 부처님은 제법부동본래적(不動本來寂)이에요.

부동한 자리에서 고요한 자리에 그렇게 계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항상 수연부감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원하지 않아서 그래요..


부처님은 대자대비 하셔가지고 모든 중생이 다 고통을 떠나서

즐거움을 얻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알고 계시고

또 그 말씀을 다 설해놨는데 우리가 원하는 사람들이 가져다

써야 되는데 쓰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 거예요.

부처님은 어떤 말씀을 하시느냐.

나는 의사와 같다 그래서 병을 고치는 많은 약을 구비하고 있는데

그 약을 먹거나 먹지 않는 것은 나의 허물이 아니고 아픈 사람의

환자의 허물이다 이렇게 말씀하세요.


부처님께서 억지로 막 하신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분들이

다 부처님 제자가 되겠지요. 그러나 인연이 있어야 제도가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바탕에서는 본래 부동하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오셔서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가 축원하지 않고 발원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은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원하면 언제든지 나타나고 가르침을 주십니다.



여러분들도 여기 공부하러 오셨잖아요.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여기 한국불교대학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고 또 많은 학인들이 있는 데가 없는 것 같아요.

아마 그렇지요? 여러분들 자부심이 좀 생기시지요?

뿌듯하죠? 자랑스럽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곳 어딜 가서 보더라도 여기만큼 많은 분들이 공부하는

데가 드문 것 같고 그래서 여기 올 때마다 저도 무언가를 해볼까?

불교교양대학을 해서 나도 천 명 이천 명 해볼까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사실 그게 그렇게 마음먹는다고

되질 않아요. 부처님께서 다 인정해줘야 돼요.

가피를 받아야 돼요.


제가 생각할 때는 이 도량에는 분명히 부처님의 가피력이

내려와 있고 또 이 도량에 있는 회주스님은 부처님의 가피를

충분히 받고 있기 때문에 이 많은 대중이 이 도량에

운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도량을 만나는 것도

아주 행운이고 복이고 자랑할 일이예요.


여기 한국불교대학에 공부하러 다닌다고 하면 그 얼마나 뿌듯합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절인데..

그러니까 자부심을 갖고 공부를 해야 됩니다.

좋은 도량에 시설도 좋잖아요.

이런 도량 만나는 것도 어렵고 그 다음에 큰 도량이 있더라도

좋은 스승을 만나야 됩니다.


새도 쉴 때는 숲을 가린다고 했잖아요.


조제장식필택기림(鳥之將息 必擇其林)

인지구학 내선사우(人之求學乃選師友)


이렇게 했는데 사람도 배울 때에는 벗과 스승을 가려서

배워야 된다는 거지요.

여러분들도 아마 공부를 하는데 여기저기 좋은 스승을 찾아서

많이 다녔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동서남북 사방을 다 둘러봐도 제 생각에는

여기 회주스님만큼 훌륭한 스님이 없는 거 같아요.

여러분들 생각은 어때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수많은 스님들이 교양대학을 하고

절에서 법회를 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지만은

이렇게 많은 대중을 운집해서 눈에 보이게 성과를 나타내는 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눈으로 보이잖아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잖아요. 백번 들으면 뭐해요.

실제로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잖아요.

저도 그래요 여기 와서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는 거예요.

그건 스님의 원력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에요.

누가 뭐 어디서 한다고 해서,

도량 좋은데 가서 어떤 스님이 강의를 한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대중이 운집하지 않습니다.



석사나 박사나 외국 유학을 갔던 분들이 불교 팔만대장경을

다 외우고 한들 그분들한테 이렇게 많은 대중이 운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큰 스승을 만난 거예요. 왜? 이렇게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는 거니까.

많은 대중이 모이는 것 자체가 스님의 법력이에요.


훌륭한 법력을 만난 것이고 이렇게 훌륭하신 스님과 같이

이 도량에서 부처님 말씀을 다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아주 우리가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인 거예요.

아주 엄청나게 행운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제가 회주스님을 잘 지켜보는데 그냥 그냥 그럭저럭

그렇게 사시는 분이 아니에요.

철저하게 수행하고 부처님 법에 대해서 알고 이 법을 위해서

뭔가를 펼쳐야 되겠다는 사명감과 원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예요.

만행도 좀 다녀보고 그랬는데 스님께서 법당에서 절하면서

하신 말씀이 그거예요.

33층, 천개도량, 마음속에 이게 다 원력을 갖고 있는 거예요.

보니까 층수를 다 합치면 33층은 더 되고 한 300층은 될 것 같아요.

그렇지요? 33층은 문제가 아니고

삼만 삼천 층 이렇게 해야 되실 것 같고

또 도량도 천 개 도량 그랬는데 그것도 좀 작고

백만 개 도량은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도량이라는 게 직심이 도량이에요.


심이 정토고 직심이 도량이기 때문에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그 마음속에

큰스님의 말씀을 새기고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기고 있으면

그 사람 사람마다가 다 도량이 되는 거예요. 그게 도량이에요.


 


우리 연등불 다 아시잖아요.

과거 연등불 때 가다가 선혜 동자를 만나서 큰 감동을 받았잖아요.

머리를 풀고 옷을 벗어서 진흙탕을 건너시게 할 때 연등불이

선혜 동자를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이 땅은 참 영험 있는 도량이기 때문에 여기다가 절을 하나

세워야 되겠다 그 말을 해요. 그러니까 그 옆에 따라오던

현혜장자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그 지팡이를 짚고 와가지고

거기다가 딱 꼽으면서 부처님 범찰를 잘 지었습니다. 그런 거예요.

범찰은 깨끗한 도량을 하나 잘 마련했습니다. 그런 거예요.

절을 잘 지었습니다. 지팡이 하나 꽂고...


아 그래? 그럼 범찰을 잘 지었으니까 도량을 장엄해야 되겠다

부처님께서 도량을 잘 장엄해야 되겠다 하니까

하늘에 계신 제석천왕이 풀 한 포기를 뽑아가지고 와서

지팡이 앞에다 물이 있으니 또 심은 거예요. 부처님 도량 장엄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잘했다 하시고 다음에 이 자리에서

부처님이 성불하시는데 그 때 이름이 석가모니불이라고 해라..

그 자리가 어디냐 하면 인도 부다까야 보리수 나무고

그 자립니다. 그 자리가 그런 자리예요.

그러니까 진실한 마음으로 지팡이 하나 꽂고

그 지팡이 하나에 풀 한포기 심는 그 마음이 있으면

그 자리가 도량이 되는 거예요.

후대 어느 때에 가서는 그 도량이 아주 큰 도량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지금 마음속에 다 갖고 있는 직심,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고 새기고 있고, 또 실천하면

더 좋은 도량이 되겠지요.

그러면 사람 사람마다 다 도량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천 개의 도량이 아니라 이제는 백만 개의 도량이라 해야 되겠어요.

백만 개도 작습니까? 더해야 돼요?


그래서 이 도량에서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항상 끊이지 않고 널리 널리 퍼져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되고

큰스님이 항상 건강하시라고 모두가 축원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집안 가족들만 건강하지 말고 우리 큰스님도 함께

한 천 살은 사셔야 되겠죠?

큰스님들은 오래 사셔야 돼요.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그냥 가만히 계서도 건강하게만 오래 사셔야 됩니다.


 또 도량에서 공부할 때 스님도 잘 만나야 되지만

선우라고 있어요. 벗을 잘 만나야 된다는 것도 있습니다.


운지구학내선사우(人之求學乃選師友)라고

스승도 좋지만 벗을 잘 만나야 되는데

제가 여기 와보니까 여기 도량에서는 법, 도반이

이렇게 많은데 어딜 가도 이렇게

많은 도반을 만날 곳이 없어요. 인정하시죠?

그러니까 또 감사하게 생각해야 돼요. 내가 여기 참 잘 왔다

좋은 인연이다 생각해야 돼요.


이 좋은 벗은 부처님도 얘기하셨어요.

부초심지인 수원리악우(夫初心之人 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 하라 하셨어요.


악한 벗은 멀리하고 착한 벗은 가까이 하라 해서

이 벗이 내 공부하는데 전부라고 생각하면 돼요.

도반, 이름 한번 불러보세요. 도반하면 전부 참 좋지요?

친구(親舊) 친할 친! 오랠 구! 교우(校友), 뭐 이런 거 보다

도반하면 뭔가 진리와 함께 가는 짝이잖아요.


뭔가 손잡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짝! 아름다운 것도 함께 볼 수 있고

먹는 것도 함께 먹을 수 있고 좋은 사람도 함께 만날 수 있고

또 슬픈 거 기쁜 거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런 분들이 도반이에요.

그래서 이 도반이 아주 중요하고 여러분들도 지금

다 모르는 분들이 이렇게 모이셨잖아요.

환경도 틀리고 이름도 틀리고 배운 것도 틀리고

직업도 다 틀리지만 이 자리에 온 것도 다 인연이다

좋은 기회다 생각하고 이 도반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아끼고 존중하고 존경하고

혹시나 서툰 점이 있어도 양보하고 이해하고 또 부족한 점은

도와주고 그렇게 탁마해야지요.


탁마하면서 이렇게 함께 공부하는 거예요.

탁마상성 붕우지은(琢磨相成 朋友之恩)

부처님은 그렇게 했어요. 탁마하는 벗에 도반에 은혜를

항상 잊지 말라는 거예요.


도반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도반이 좀 서툴고

부족하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서로 이해하고 함께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잘해주고 또 이 도량과 인연을 맺지 못한 분들도

이 도량에서 함께 가자 권해서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됩니다.



저도 회주스님 말씀을 좋아합니다. 법보시 책도 나오잖아요.

조그만 법공양 책도 나오고 하는데 또 저술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저도 가끔씩 읽어보고 하는데 회광반조라는 그런 책도 있어요.

아마 무문관에서 지으신 건가 봐요.

거기 읽다 보니까 스님께서는 또 시인이시잖아요.

한글 시만 짓는 것이 아니라 한시도 지으시구요

하여튼 간에 못하는 게 없어요,

근데 거기 시 있는데 여러분들도 좀 보셨을 거예요.

기억이 안 나는 분들도 있겠지만..


스님께서 어느 날 방안에 있는데 부처님께

향을 하나 올리고 싶더라는 거죠.

우리는 항상 아침저녁으로 또 사시공양 때 부처님께 공양 올리잖아요.

향을 올리려고 하는데 향을 꽂을 데가 없는 거예요.

무문관 안에 뭐가 제대로 있겠어요?

근데 마침 쟁반위에 보니까 포도알이 하나 굵직한 게 있더래요.

그것도 매달려 있는 게 아니라 한 알이 떨어져 있었겠죠.

그래서 스님께서 향을 포도에다가 꽂았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러면서 그 때의 소감을 시로 적었는데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사귀고보면 짝 아닌 게 없다. 도반 아닌 것이 없다. 친해지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거죠. 사귀고보면 짝 아닌 게 없다.

이거 참 좋은 말이에요,

가서 한 번 찾아보세요. 그런 말이 있는가 없는가.

모르셨죠? 제가 좋은 거 가르쳐 드렸어요.

한번 보시구요, 스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머리도 좋으실까

향을 어떻게 포도알에 꽂으실 생각을 다 하셨을까 그런 생각도

있고 하신 말씀이 짝 아닌 게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소문을 듣기로 나쁜 사람도

그 쪽에서는 나쁜 사람이지만 이쪽에서는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한테는 나쁜 사람이지만

나한테는 좋은 사람이 선우가 될 수가 있습니다.


사귀고 봐야 돼요. 사귀고보면 짝 아닌 게 없다.

그러면서 뒤에 구절이 한 자루의 향과 포도가 만나가지고

이렇게 행복한 이러한 순간은 아마 유사 이래로 없었을 게다 그래요.


참 멋있지 않아요? 한 자루의 향과 포도알이 뭐 자기네들이 행복을

알겠어요? 행복한 사람은 누구예요? 스님 본인이 행복한 거지요.

그림을 하나 그려도 참 멋있잖아요.

포도알에다가 향을 꽂아놓고 그 앞에서 그걸 바라보고

향과 포도가 만나서 참 행복하겠다 이런 행복은 유사 이래로

없었을 게다 그렇게 적어놓으셨는데

행복한 사람은 향도 아니고 포도알도 아니고 그렇게 하는

스님의 마음이지.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를 거기서 피어나는 향은

아마 그 향내가 포도알처럼 달콤할 거 같아요.

아주 달달한 향내가 날 거 같고

그러한 향기가 우리 세상에 퍼져가지고

아마 여기까지 올 것 같습니다. 지금 향기가 맡아집니까?

향기가 여기까지 옵니다.


그 포도와 향의 행복이

지금 이 순간에 막 전해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 것은 스님께서 무문관에 좀 오래 계셨잖아요.

스님께서는 섬에도 가서 공부하시고 선방도 가시고

나름대로 여기 있으나 저기 있으나

항상 수행하시면서 세밀하게 관찰, 집중해서 그런 경험에서

우리가 기지라고 그러는 꾀가 딱 나타나는 거예요.

무문관 그 밀폐된 공간 속에서 바깥으로 볼 것은 없어요.

오로지 내면의 세계를 보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보고 있는 거예요.

자신을 깊이깊이 바라보면 그러한 감각이 나타납니다.


우리 불자들은 내면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에요.

내면이라는 것은 자기 마음자리,

이 마음자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우리 불자고 수행이잖아요.

아마 우리 회주스님께서도 무문관 안에서 밤이나 낮이나

자기 마음자리를 보니까 자기 마음을 꿰뚫어보고

자기 마음을 꿰뚫어 보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도 꿰뚫어 볼 수가 있을 거 같아요.


아마 여러분들이 회주스님 앞에 서면

회주스님은 이렇게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눈보고 코보고 입보고 귀보고 딱 보면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여러분들이 언제 한번 실험을 해보세요.


우리가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서 얼굴 한 번씩 보잖아요.

우리 회주스님이 거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거울 앞에 딱 서보세요.

그러면 마음을 회주스님이 다 알아차리실 거 같아요.

여러분들 마음속에 감춰둔 거 다 들통 날 거 같아요.

수행을 열심히 해서 내면의 세계를 깊이깊이 들어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어요.


혹시나 살다가 어렵고 힘들면 스님께 내 마음 한번 읽어주세요.

나는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다 읽어드릴 거예요.

우리 답답한 마음도 잘 알아서 괴로운 마음도 잘 풀어주시고

가르침도 주실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할 때는 스승도 좋지만

도반이 좋은데 스님께서도 포도알 하나와 향을 가지고도

참 짝이 잘 어울리고 행복하다 이렇게 노래하는데

스님이 생각하는 포도알이나 향이나 다 볼 때는 여러분들이요.

스님이 이렇게 있는데 여러분들이 이렇게 찾아와서

부처님 말씀을 배워주고 모여들고 서로 어울리잖아요.

그럴 때 행복이 솟아날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공부하러 오셨는데 항상 감사하고

다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기회를 다신 만날 수 없다 천재일우(千載一遇)다

일기일회(一期一會)다, 천년에 한 번 만날 수 있을까말까 한 기회고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는 기회다 앞으로 이런 법회를

만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공부하는데 게으를 수가 없어요.

그러면 열심히 공부해서 도를 닦게 되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참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다행스런 사람이다

이 법회에 참석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 사람인가 그렇게 다행스런 마음을 가지면

내가 물러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퇴보심이 안 생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참 좋은 기회를 만났다

참 다행스럽게 이 법회에 왔다 이런 생각으로 법문을 들으시면 돼요.


또 법문을 들을 때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하는데 그러기 보다는

여기 와서는 다 잊어버려야 돼요. 전화기도 좀 꺼놓고 집 생각도 잊고

오직 한 생각 일념으로 이 강의에 집중해야 합니다.

얼음을 밟고 지나가듯이 그런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돼요.

어떤 사람은 한번 들어보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안 갈란다 그러지 말고, 그게 현해심이라는 거예요.


절벽을 보고 저 산에 어떻게 올라가나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하다보면 공부할 수 있습니다.

팔공산 비로봉 올라갈 때 한 발짝 한 발짝 올라가잖아요.

여기서 바라볼 때는 힘들어 보이더라도 그 벼랑을

어떻게 올라가나 돌아서지 말고, 물러나는 퇴보심을 갖지 말고

올라가려는 용기를 좀 내야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면은 맨날 했던 소리 하고 또 하고

맨날 그 소리네. 그러는 걸 관문상이라고 해요.

아 나는 많이 들었다, 많이 들으면 뭐해요 실천을 안 하는데..

많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들은 얘기라도 한 번쯤

더 생각해보고 반복하는 거지요.

또 어떤 사람은 쉽다고 그러잖아요.

내가 다 아는 건데 외우고 있는 건데 뭐..

그렇지만 쉽다는 생각도 내지 말고

오로지 간절한 마음으로 강의를 들어야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어떻게 얘기하셨냐 하면은 열반경에서

여구두연(如救頭燃)하라고 그래요. 내 마음으로 해야 됩니다.

여구두연 이라는 것은 여러분들 머리에 불붙었잖아요?

짧은 머리는 붙을 거 없는데 긴 머리는 금방 확 타버리겠죠?

그 불을 꺼야 될 거 아니에요.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그렇게 이 생각 저 생각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오로지 한 생각으로 공부하라는 겁니다.


부처님은 공부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느냐 하면 보리수 아래서

공부하셨잖아요.

보리좌에 앉아서 아주 독한 마음, 비상한 각오로 다짐했어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독한 마음 비상한 각오가 있어야 됩니다.

그냥 놀기 삼아 가서 들어보지 그러지 말고,

부처님은 어떤 마음으로 했느냐 하면

피도 살도 다 말라붙으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가죽과 뼈만 남아라 그랬어요.

부처님의 고행상 보셨지요? 실제로 그렇게 하신 거예요.


피도 살도 다 말라버려도 괜찮다는 거예요.

뼈만 남고 가죽만 남아도 좋다는 거지요.

그다음에 깨달아야 되겠다는 장부의 집념,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인 정진력,

또 장부의 용맹심을 가지고 장부가 이뤄야 할 일을

이룰 수 없다면 무엇을 내가 아끼겠느냐, 무엇은 이 목숨이죠.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깨닫겠다는

아주 비상한 각오와 독한 마음을 갖고 수행에 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공부하실 때는 독한마음, 비상한 각오하셔야 합니다.

집념, 집중해야 합니다.

정진, 열심히 노력해야 됩니다.

그리고 용맹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주위에서 꽃놀이 가자, 잔치 집에 가자면서

옆에서 방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오직 내가 갈 곳은 여기 한국불교대학대관음사에서

회주 큰스님의 강의를 듣는 시간이다 라는 용맹심을 발휘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왕 이렇게 강의 듣고 공부하러 왔으면

무조건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러면 효과가 있잖아요.

나는 지금 시작하지만 선배들 보면 알거 아니에요.

여기서 공부하고 나간 사람들이 다 기쁘고 행복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잖아요.

그걸 보면 돼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에요.

지금 처음와서 이렇게 하지만은 나도 공부하면 기쁘고

행복하고 그렇게 자부심을 갖을 수 있겠구나 해야 됩니다.

이제는 다른 데 가서 뭘 구하려 하지 말고

여기서 스님만 믿고 평생 공부할 각오를 해야 돼요.


그래서 스님을 모시고 부처님 공부하고 또 수행하고

실천을 해야 되겠다 그렇게 하면

마음속에 아주 행복이 일어나고 자부심이 생깁니다.



참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데

이 기회라는 것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앞머리는 있고 뒷머리는 없다 그래요.

그리고 발등에는 날개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회가 올 때 앞머리를 확 잡아버려야 돼요.

지나가면 뒷머리가 없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어요.

또 날개가 있어서 잡지 못하면 금방 날아가 버립니다.

이런 도량을 만나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복인 줄 모릅니다.

기회가 있을 때 공부 열심히 하셔야 해요.

우리 불교가 한 천 육백년 동안 이렇게 내려왔잖아요.

한국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내가 부처님 법을 만난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돼요.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강경송이 있어요.

불교 경전을 공부할 때 외우는 게송이 있는데

산중의 강원에서

스님들이 경전을 보기 전에 외우는 그러한 게송이에요.


여러일 열반이 근삼천재라

명여수감하니 기웅하락일이요

당근정진하되 여구두연하고

단념무상하여 신물방일이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가 삼천재 재는 연이란 뜻이죠.

그렇게 멀어졌다는 것이에요.

명여수감하니 기웅하락일이요,

우리가 이렇게 명 또 수가 이렇게 하루하루 점점 지나가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우리가 오십이 지나면

오늘이 제일 좋은 날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못해요. 내년이 오늘보다 못하고

십년 후도 오늘보다 못해요.

오늘이 최고의 날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명여수감 한다는 거지요. 명이 자꾸 자꾸 줄어들어요.

우리가 하루 사는 것은 하루 명이 줄어든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이 부처님 공부하는 것만큼 더 즐거운 것이 없다.

이 공부하면은 법희, 진리를 아는 즐거움이 막 올라옵니다.


공부하다 보면 어떠한 순간에 참 그렇구나

법성원융무이상이구나 하고 손뼉을 치고 웃고

그러면 등줄기부터 허리에서부터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막 뻗쳐 올라옵니다.

수행하다 보면 그런 경험이 있어요.

즐거움을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어요.

부처님 법 안에서 충분히 찾고 또 선배 스님들이

이 부처님 법을 배워가지고

그러한 즐거움을 아는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니에요.

많이 있어요. 나는 지금 안 하고 있을 뿐이에요.

하면 또 얻을 수 있습니다.


무슨 즐거움이 또 있겠는가? 여기에 내 즐거움이 있다.

다음에 당근정진 하되 여구두연,

다만 부지런히 정진하고 공부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머리에 불 끄듯이 하라는 거지요.

그리고 단념무상하야 신물방일이어다. 그래요.

항상 무상을 생각하시라는 거예요.

무상하다는 건 항상 하지 않고

언젠가는 우리는 다음 생으로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방일하지 말라 게으르지 말라고 그래요.



우리가 공부하는데 있어가지고 적이 있고 무기가 있어요.

우리가 공부하는데 적은 무어냐 하면

게으른 겁니다 방일하는 거.

또 한 가지는 아상이에요.

내가 뭐 안다는 거, 잘 났다는 거.. 이건 적입니다.

게으른 거 하고 아상은 적이에요.

그럼 무기는 뭐냐? 무기는 정진력과 인욕입니다.

인욕하고 참아도 참아야지요.


배슬(拜膝)이 여빙(如氷)이라도 무연화심(無戀火心)하며

아장(餓腸)이 여절(如切)이라도 무구식념(無求食念)하는

인욕을 해야지요.

공부하다가 배가 고파서 창자가 끊어지더라도

밥 생각 하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절하다가 무릎이 얼어서 깨질 정도라 하더라도

불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된다 그랬잖아요, 인욕이죠.

그 다음에는 정진, 노력해야 되는 거지요.

이게 우리의 무기입니다.


그래서 방일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 그래서

우리도 공부할 때 이러한 마음으로서 좀 독한 마음으로

좀 열심히 공부하면은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가슴에 좋은 법당을 하나씩 차릴 수 있을 겁니다.

일기일회, 내 일생에 한번 밖에 오지 않을,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그런 기회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좀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강의를 시작 할 때 상강례라고 있어요.

제가 한 삼십년 전에 강원에서 해본 건데

이렇게 개강을 하고 시작을 하니까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부처님께

상강례 한번 하고 오늘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합장해 주세요.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제불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존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현성승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아제자등 강론삼장 유원삼보 위작증명

[我第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나무본사 석가모니불

나무본사 석가모니불

나무본사 석가모니불


무상심심 미묘법[無上甚深 微妙法]

백천만겁 난조우[百千萬劫 難遭遇]

아금문견 득수지[我今聞見 得受持]

원해여래 진실의[願解如來 眞實意]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2018년 한국불교대학大관음사 신입생 입학식
 영화 한 편 만드는 것이 불법을 알리는 좋은 방편이 된다.[무문관 無門關 대구시사회]